미국과 미국인들을 제일 먼저 우습게 본 사람은 영국왕 조지 3세였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을 때 미국 인구는 영국의 1/3에 불과했고 제대로 된 군대도 없었다. 반면 영국은 7년 전쟁을 통해 유럽과 북미, 인도 등 세계 각지에서 프랑스를 꺾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갖고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1776년 7월 독립을 선언하고 처음 벌어진 뉴욕 전투에서 독립군은 연전연패 해 불과 한 달만에 괴멸될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워싱턴과 그 휘하 장병들은 굴하지 않고 그 해 크리스마스 이브 트렌튼 전투에서 승리하며 반격의 기회를 잡았고 그 후 5년 동안 끈질긴 싸움을 벌여 마침내 1781년 요크타운에서 콘월리스 장군의 항복을 받아내며 독립 전쟁의 승리를 쟁취한다.
그 다음 미국을 깔본 나라는 일본이다. 1894년 청일 전쟁, 1904년 러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은 물질주의적이며 쾌락만 찾는 미국인들을 경멸하며 초기에 한 방 먹이면 금방 손을 들고 협상 테이블로 나오리라 믿었다. 그러나 하버드에서 공부하고 워싱턴 일본 대사관 무관을 지낸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만은 예외였다. 일견 둔한듯 보이지만 한번 결심하면 누구보다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미국인 기질과 미국의 무한한 생산력을 아는 그는 처음부터 태평양 전쟁에 반대했다.
진주만 기습 공격 계획을 짜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고 실행에 옮기면서도 그는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마음껏 뛰어보겠지만 그 후에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자신이 없다”는 말을 남겼다. 그의 말대로 일본은 1941년 12월 진주만 공격에는 성공했지만 꼭 6개월 뒤인 1942년 미드웨이 전투에서 6척의 항모중 4척을 잃고 제해권을 상실하며 이로써 태평양 전쟁의 승패도 사실상 판가름 났다.
미국을 얕본 것은 히틀러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자 가만히 있어도 되는데 일방적으로 미국에 선전 포고를 했다. 미국은 흑인과 유대인 등 열등한 민족이 섞여 있는 허접한 나라라는 근거 없는 오만 때문이었다.
미국을 깔본 나라들은 망하거나 망신을 당해왔음을 보고도 이런 잘못을 되풀이하는 사람과 나라는 계속 나오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소련 공산당 서기장 후르셰프다. 그는 1956년 모스크바의 폴란드 대사관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대사들을 불러 놓고 “역사는 우리 편에 있다. 우리는 당신들을 매장시켜 버릴 것이다”라고 큰소리 쳤다. 그러나 불과 30여년 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더니 소련마저 해체되고 말았다.
중국발 코로나가 미국을 강타하면서 올 초 감염자와 사망자가 급속히 늘어나자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미국은 의료 후진국이라며 깎아내렸다. 그러나 그 후 1년도 안 돼 상황이 좀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 연방 식품 의약국은 1주일 전 화이저의 코로나 백신을 긴급 승인한데 이어 지난 주말 모더나의 백신도 긴급 승인했다.
이번에 승인된 모더나 제품은 화이저보다 여러 면에서 우수하다. 화이저 제품은 내년 3월말까지 5,000만 명 접종분이 준비돼 있는 반면 모더나는 1억 명분을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장점은 화이저 백신은 영하 섭씨 70도에서 보관해야 하지만 모더나는 냉장고 온도인 영하 20도면 돼 의료 시설이 열악한 시골 병원에서도 접종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두 미국 회사는 오랜 세월 축적된 기술력과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1년도 안 돼 효과 95%의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 현재 예상대로라면 내년 여름이면 미국은 집단 면역에 필요한 70% 접종이 가능하며 가을에는 정상 생활로 복귀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반면 의료 선진국을 자랑하던 한국은 언제 이들 백신을 공급받을 지 기약할 수 없는 상태며 자체 백신 개발은 내년 말이나 돼야 가능하다고 한다. 현재까지 확보된 것은 식품 의약국의 승인을 아직 받지 못한데다 예방 효과가 70% 정도인 영국의 아스트라제네카뿐인데 그나마 1,000만명 분밖에 없다. 이 상태라면 코로나 악몽에서 먼저 벗어나는 것은 미국이 될 것 같다.
전쟁에서 먼저 웃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짜 승자다. 미국을 우습게 보고 싶은 사람들은 지난 역사를 한번 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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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