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9월 30일 영국과 프랑스,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는 독일 뮌헨에서 300만 독일인이 살고 있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를 독일에게 떼어주는 것을 골자로 하는 협정에 서명했다.
이곳은 중무장한 군사 요충지로 이곳을 넘겨주면 체코의 안위는 보장될 수 없다는 체코 정부의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체코와 군사 동맹까지 맺고 있던 프랑스마저 ‘이곳만 주면 더 이상 영토 야욕은 없다’는 히틀러의 말만 믿고 오히려 체코에 압박을 가했다. 우방한테서 버림 받은 체코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이 협정문을 손에 쥔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 수상은 런던으로 돌아가 “우리 시대의 평화”가 왔다고 외쳤다. 착각이었다. 불과 6개월 후 히틀러는 약속을 깨고 체코 전역을 점령했고 다시 6개월 후에는 폴란드를 침공했다. 그것이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이다.
80여년 전 체코에서 일어났던 일이 이제 우크라이나에서 되풀이되려 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동부 전선 전 지역에서 전쟁 초 탈환했던 영토를 서서히 다시 러시아 측에 넘겨주고 있으며 이로 인해 국민과 군 모두 사기가 저하되고 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의 영웅적 항전으로 러시아는 엄청난 타격을 입었지만 인구가 4배에 달하는 러시아의 물량 공세에 밀리는 판세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력이 부족한 우크라이나는 음악회에 참석한 청년을 강제로 징집하는 등 강압적인 조치도 불사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반감도 커지고 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전쟁 장기화에 따른 서방의 피로감이다. 이번 대선에서 루저 도널드가 당선되면 말할 것도 없고 민주당이 집권하더라도 언제까지 우크라이나를 도와야 하는가 하는 여론의 압력을 무시할 수 없고 우크라이나 영토를 일부 넘겨주고 평화 협정을 맺자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푸틴의 목표는 구 소련 영향권의 완전한 복원이다. 점령지 합병을 완수한 후에는 구 소련의 일부였던 우크라이나 전체와 발트해 3국, 나아가서는 동유럽까지 세력을 확대하려 할 것이 뻔하다.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유럽 전체가 흔들릴 것은 자명하다.
1930년대와 닮은 것은 이뿐이 아니다. 30년대는 외부 분쟁에 상관하지 말고 미국만 잘 살면 된다는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와 관세 장벽의 시대였다. 괜히 제1차 대전에 참전했다 피만 봤다고 생각한 미국인들은 두 개의 대양을 해자로 삼아 우리만 안전하게 살고 경제도 외국 물건의 수입을 차단하고 자기가 만든 물건만 써 경제를 살리자는 착각에 빠졌다.
그 결과물이 1930년 제정된 ‘스무트 홀리법’이다. 2만개 수입품에 대대적 관세를 매긴 이 법으로 인한 무역 전쟁으로 미국의 무역량은 대공황 기간 67%가 감소했다. 이 법이 대공황을 악화시켰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아메리카 퍼스트’와 대대적인 관세 부과는 루저 도널드의 핵심 주장이다.
만주 사변과 중일 전쟁 등이 일어난 것도 1930년대다. 유럽에서 독일의 체코 병탄과 폴란드 침략,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중국 침략이 모두 미국이 팔짱을 끼고 고립주의를 고수할 때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세계 평화를 지킬 유일한 힘을 가진 나라가 수수방관할 때 악당들은 날뛰기 마련이다.
두 개의 바다가 미국을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란 기대는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무참히 깨졌다.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으며 악당일수록 더욱 그렇다. 중국을 마음껏 유린한 일본은 그 대상을 동남아 전역과 심지어 인도, 호주까지 넓히려 했고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태평양 함대 궤멸이 전제 조건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 결과가 태평양 전쟁이다.
제2차 대전이 끝난 후 오랫동안 사람들은 히틀러의 체코 병탄을 용인한 체임벌린과 중국 침략을 방치한 미국 지도자들의 어리석음을 지탄해왔다. 그러나 그후 80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그 때와 비슷한 상황을 맞고 있다. 1차 대전 참전에 환멸을 느끼고 값싼 수입품 때문에 미국인들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생각한 미국인들이 고립주의와 ‘스무트 홀리법’을 지지했던 것처럼 지금 미국인들은 장기간에 걸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지쳤고 세계화가 중산층을 몰락시켰다고 믿으며 ‘아메리카 퍼스트’와 고율 관세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세계는 그때보다 더 단단히 하나로 묶여 있다. 80년 전 선택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면 지금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우크라이나의 몰락을 서방이 수수방관하고 미국의 고율 관세가 무역 전쟁을 촉발할 경우 세계 안보와 경제가 30년대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말란 아무런 보장이 없다. 미국민들과 지도자들은 그 때의 쓰린 역사를 한번 되돌아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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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