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바이든 행정부의 패착은 일찍부터 시작됐다. 도널드의 코로나 초기 대응 실패로 2020년 대선에서 이긴 바이든은 취임하자마자 경기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2021년 3월 ‘미국 구조 계획법안’에 서명했다. 이 법은 경기 부양을 위해 1조9천억 달러 규모의 정부 지출을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가구당 수천 달러씩 정부 보조금을 받게 된 미국인들은 좋아했지만 이 법은 불필요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경기가 이미 회복기에 접어들었고 코로나로 공급망이 교란된 상태에서 거금을 뿌리면 수요 폭발로 인플레가 유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 때 최고위 경제 보좌관을 역임한 래리 서머스는 이 법을 “지난 40년래 가장 무책임한” 경제 정책이라며 이 법으로 인플레가 가속화할 가능성이 1/3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무시했다. 인플레는 지난 40년간 문제가 돼 본 적이 없고 경기 침체가 더 큰 위협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1년 뒤인 2022년 3월 나온 샌프란시스코 연방 준비 은행 보고서는 이 법과 2020년 도널드 행정부의 경기 부양법으로 2021년 핵심 인플레는 3% 포인트 올랐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런 경고와 보고서가 나온 이상 더 이상 정부 지출은 삼가는 게 순리다. 민주당 다음 세대에게 바톤을 넘겨주는 과도적 역할을 하겠다던 선거 공약과 달리 바이든은 취임 후 자신을 제2의 프랭클린 루즈벨트로 생각하는듯 민주당 좌파의 숙원 사업인 그린 에너지 지원을 밀어부쳤다. 그 결과가 2022년 통과된 ‘인플레 감축법안’이다. 이 법안은 녹색 에너지 지원을 골자로 8천900억 달러 추가 지출을 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불붙은 인플레에 기름을 부었다.
2022년 6월 미 인플레는 40년래 최대치인 9%를 기록했다.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별 거 아닌 것처럼 치부하던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는 급속히 금리를 올리며 늑장 대응에 나섰다. 인플레는 내려가기 시작했으나 이미 늦었다. 서민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식품, 개스, 주거비 물가는 이보다 훨씬 많이 올랐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달걀 값이다. 바이든 집권 초 12개에 1달러 50센트 하던 달걀이 2023년 1월에는 4달러82센트를 기록했다. 2024년 대선 기간 공화당은 달걀 값을 공격하는 광고를 수없이 내보냈다. 도널드도 연설할 때마다 이 이야기를 하라는 보좌관들에게 “나 보고 달걀 얘기를 도대체 몇번을 하라는 거냐”고 짜증을 냈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나 그 덕에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사람의 실수에서 별로 배우는 게 없는 모양이다. 도널드는 집권 후 바이든의 실책을 되풀이하려 하고 있다. 그는 선거 기간 내내 관세의 대폭 인상과 대대적인 불법 체류자 추방을 공언했고 집권 후 이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정책은 대다수 경제학자들로부터 인플레를 상승시키고 경제 질서를 교란할 것이란 비판을 들어왔지만 도널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그가 가상 적국인 중국은 물론이고 이웃 멕시코와 캐나다 상품에 고율 관세를 매겼다 떼었다를 반복하는 사이 금융 시장과 실물 경제는 멍들어 가고 있다. 소비자 신뢰지수는 2023년래 최저로 추락했고 1월 소비자 지출도 급속히 식고 있다. 애틀랜타 연방 준비은행 보고서는 올 1/4분기 미국 경제가 -2.4% 성장한 것으로 추산했다.
금융 시장도 도널드에 대한 기대를 접고 있다. 미 주가는 그 당선 후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고 미 증시를 주도하던 ‘황야의 7인’ 주식 중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아마존, 애플은 선거 후 최고치에서 10% 이상 떨어졌다. 이들 중에서도 대장주로 꼽히던 엔비디아는 30%, 테슬라는 50% 가까이 폭락했다.비교적 낙관주의자로 평가받는 에드 야디니조차 관세로 인한 불황이 올 가능성이 20%에서 35%로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계란 값은 다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2024년 초 2달러 초반까지 떨어졌던 계란 값은 도널드 당선 후 급상승해 지난 1월 4달러 95센트를 기록했다. 그 직접적 원인은 조류 독감으로 인한 대량 살처분 때문으로 보이지만 유권자들은 바이든 때처럼 원인에는 별 관심이 없다. 4년전 인플레 위험을 경고한 래리 서머스는 “지금이 4년만에 가장 중요한 시기”라며 도널드발 관세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 재발 위험을 경고했다.
유권자들은 미국 법치주의가 어떻고 대서양 동맹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내일 밥상에 오를 달걀 값이 얼마냐에 대해서는 민감하다. 달걀이 바이든 행정부를 무너뜨린 것처럼 도널도도 깨부술 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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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