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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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우구스티누스에 관한 명상

2024-11-12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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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410년 8월 24일 게르만족의 일파인 비시고트의 수장 알라릭은 로마를 함락시켰다. 당시 로마는 서로마 제국의 수도가 아니었지만 ‘로마의 약탈’은 서로마의 시대는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로마의 약탈’이 사람들에 준 충격은 컸다. 그 중 한 명이 사도 바울 이후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기독교인이라고 불리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였다. 지금 아프리카인 히포의 주교였던 그는 어떻게 ‘로마의 약탈’ 같은 비극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신국론’을 썼다. 로마와 같은 ‘지상의 도시’는 아무리 위대해도 결국 망하지만 ‘하나님의 도시’만은 영원하며 모든 기독교인은 ‘지상의 도시’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시’를 섬겨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약함과 악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청년 시절 방탕한 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정부와 살며 아들까지 낳았지만 신분이 높은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 이들을 버렸다. “주여, 저에게 순결함을 주소서. 그러나 아직은 아닙니다”(Lord, give me chastity, but not yet)라는 그의 기도는 아직까지 전해 온다.


역시 그의 대표작인 ‘고백’은 인간이 어린 시절부터 얼마나 악에 물들어 있는지 자신의 체험을 통해 실토한 참회록이다. ‘고백’은 그가 16살 때 이웃집 과수원에서 배를 훔친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는 자기 집에 배가 충분히 있었는데도 훔치는 재미에 이런 일을 저질렀다며 인간의 마음 깊숙한 곳에 죄를 저지르려는 본능이 숨어 있음을 고백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신국론’을 쓴지 수년 후인 430년 게르만 족의 일파로 영어에 ‘밴덜리즘’이란 단어를 남긴 반달족이 그가 죽음을 앞두고 병상에 누워 있는 히포를 포위하며 그가 죽자 함락시킨다. 그들은 도시 전체를 불태우면서도 그의 성당과 도서관만은 남겨뒀다.

그후 유럽은 수백년의 암흑기를 거쳐야 했지만 결국 폐허에서 부활해 찬란한 르네상스를 꽃피웠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유럽의 역사는 인간은 잘못을 저지르지만 참회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고 무너진 문명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올 대선은 결국 중범 도널드의 승리로 돌아갔다. 돌이켜 보면 올 선거는 민주당에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미국인들의 심경을 묻는 여론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2/3가 미국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고 자신의 삶이 4년전보다 나빠졌다고 느끼고 있고 바이든 지지율은 40%에 머물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집권당이 재선에 성공한 예는 거의 없다.

거기다 해리스는 현직 부통령에다 흑인 여성이라는 약점까지 있다. 현직 부통령이 선거로 바로 대통령이 된 경우는 미 역사상 3번, 지난 100여년 동안 한 번밖에 없는데다 흑인은 안된다는 비토 세력도 엄연히 존재한다.

이번 패배의 원인으로 여러가지가 나오고 있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높은 물가로 대다수 서민의 삶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과도한 지출로 인플레를 부추긴 책임의 일단이 바이든에게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코로나로 돈을 쓴 것은 도널드도 마찬가지고 인플레 관리의 사령탑인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는 안이한 태도로 금리 인상을 늦춰 통제에 실패했다. 거기다 코로나로 인한 공급망 교란까지 일어나며 40년만에 최악의 인플레가 덮친 것이다.

도널드 집권 1기때 물가가 낮았던 것은 금융 위기와 대불황의 여파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2010년대 중반까지도 디플레가 인플레보다 위험하다는 기사가 지면을 덮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런 일은 까맣게 잊고 바이든 때는 힘들고 도널드 때는 좋았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다.


사람들이 도널드를 택한 것은 딱한 일이지만 사실 놀랄 일도 아니다. 바이마르 시대 인플레와 경제난으로 고통받던 독일 국민들은 무력으로 정부를 전복하려다 감옥까지 간 히틀러를 지도자로 선택했다. 히틀러가 빵을 약속하며 고통을 겪는 국민들에게 그 원인이 내부의 적인 유대인과 극좌파 때문이라는 답을 줬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 문제의 원인이 불법 체류자와 극좌파 등 내부의 적 때문이라는 도널드의 주장과 매우 닮았다.

바흐와 괴테와 칸트의 나라가 히틀러를 선택할 수 있다면 코플랜드와 헤밍웨이와 에머슨을 낳은 미국도 도널드를 택할 수 있다. 당장 식탁에 올릴 빵이 걱정인 사람에게 법치주의니 민주주의니 하는 소리는 고상하지만 한가하게 들릴 수 있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미국은 바이마르 공화국이 아니고 도널드는 히틀러 같은 ‘광기의 천재’가 아니란 점이다. 그의 집권 기간은 이번 한 번뿐이고 도널드식 정치가 기대에 못 미칠 때 2년 뒤 중간 선거를 통해 심판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과연 도널드가 약속대로 미국을 위대하고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지 두고 볼 일이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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