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코로나 티파티

2020-12-16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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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중국을 통해 차를 수입하기 시작한 영국 왕실은 홍차를 중심으로 독특한 차를 만들었다. 그로 인해 영국 전역에서는 낮 시각에 홍차와 다과를 곁들여 먹는 애프터 눈 티파티가 유행했다. 그 흐름에 발맞춰 졸부들과 귀족들은 너도 나도 찻잔 세트를 구입하는 데 열을 올렸다.

왕실의 이런 우아한 티파티는 상류사회를 동경하던 모든 영국인들을 차 문화로 깊숙이 끌어들였다. 한 예로, “더 이상 차를 주지 마십시오.” 라는 신호를 우아하게 하고 싶으면 티스푼을 찻잔 안에 넣는 식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그런 티파티 매너를 잘 배워야 기죽지 않고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건전한 티파티는 위스키 음주의 악습에 시달리던 영국인들에게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그때 영국 왕실의 해외 사업을 독점하는 영국 동인도회사의 중국차 수입 물량은 전 세계 물량의 40%에 달했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값싼 홍차는 재고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영국은 미국 식민지에도 홍차 수출을 독점하고 높은 관세를 붙였다. 이런 배경이 바로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을 유발시킨 것이다.


보스턴 항구에 정박해 있던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 선박의 홍차를 바다에 다 쏟아버린 사건이다. 영국 왕실의 국고를 채워주던 동인도회사는 과도한 차 수입으로 골치를 앓고 있던 터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재고 절반을 미국에 강매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런던 창고에 쌓여있는 1,000만 파운드의 차를 미 식민지에 헐값으로 덤핑하기 위해 '차 조례(Tea Act)'를 제정해 버렸다.

이 사건을 ‘다과회’에 비유하여 ‘보스턴 티 파티’라고 재미있게 부르지만, 사실은 밀거래로 부를 축적한 보스턴 상인들의 반란인 것이다. 상인들이 불만을 품게 된 이유는 그동안 영국이 설탕세, 인지세 등의 부당한 세금을 식민지에 부과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발한 보스턴 티파티는 미국 독립의 단초가 되었다. 1773년 보스턴 티파티 사건이후 영국의 동인도회사 수입 제품 불매 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미국 식민지의 중산층은 영국의 과도한 세금조례로 파괴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는 지금 코로나 시대 현상과 매우 유사한 상황이다. 차이가 있다면 영국 왕실의 압제가 아니라 자국정부인 현 미국 50개 주정부와 연방정부가 락 다운 행정명령의 주인공이라는 사실 뿐, 코로나 봉쇄 반대자들은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대응이 너무 과도한 조치라고 말한다.

최근 미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격리 조치 반대 시위는 티파티를 연상시킨다. 상인들이 그때처럼 행정당국의 코로나에 대한 방역 지침이 너무 지나치다며 항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국의 코로나 영업정지 명령을 거부하며 옥살이를 한 어느 미용실 업주도 있었다. 이처럼 여러 지역 보건국의 공중보건 행정 명령에 대해 각 도시마다 소상인들의 반발이 생겨나고 있는 것은 보스턴 티파티의 초기 같은 현상은 아닐까.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억제를 이유로 정부가 상인들의 업소에 너무 과한 대응을 한다면 혹 반발하는 이들이 늘지 않을까?

중산층의 몰락이 가속화 하고, 상위와 하위간의 소득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다 보니 올 연말의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도 우울하고 어둡기 짝이 없다. 더욱이 코로나로 인한 대량 실직 사태로 중산층까지 식량 배급을 받는 상황이 돼버렸으니 저소득층의 상황은 말해 더 무엇하랴.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사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보니 저소득층의 내년 전망은 더더욱 암울하게 다가온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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