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손경락의 법률 칼럼-종교와 실정법의 간극

2020-12-16 (수) 손경락/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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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계속 기승을 부리자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궁여지책으로 지난 10.9. 확진자 발생률에 따라 레드, 오렌지, 옐로우 존을 지정하고 각 구역별로 종교시설의 예배 인원을 각각 10명, 25명, 건물 수용인원의 50% 이하 등으로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으나 연방대법원으로부터 불가판정을 받고 말았다.

대법원은 레드 존에 위치한 가톨릭 브루클린 교구와 오렌지 존의 아구다트 유대교 회당이, 주지사의 행정명령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법원에 일시적 명령 금지처분을 신청한 사건에 대해 ‘예배 참석 규제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제1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공익과 대중을 위해서라면 사소한 개인의 희생쯤은 당연시되는 동양 정서와는 달리 전례 없는 팬데믹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정부가 개인의 종교적 자유를 침해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짧은 기간이라도 의심할 여지없이 회복할 수 없는 상처’라고 보는 미국인들의 정서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달리 말해 미국인들에게 종교 문제는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신성불가침의 영역이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은 법원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에 의거, 공립학교 교육과정에 성경을 읽거나 함께 기도하는 과정 같은 것은 만들 수 없고, 공공장소에 십계명 조형물과 같은 특정 종교 관련 장식물의 설치 등도 금지된다.

한때 루이지애나 주의회가 창조론과 진화론을 수업시간에 공평하게 가르치도록 법을 제정한 적이 있었는데 이를 두고 연방대법원이 ‘특정종교의 교리를 전파하는 것’이라며 철회토록 제동을 건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종교기관에 대한 연방 노동법의 적용 여부도 정교분리 원칙의 논란이 뜨거운 분야이다.

이 사건 발단의 주인공은 미시간에 위치한 루터란 교회 부속학교의 선생이었던 세릴 페리치(Cheryl Perich)이다. 학생들에게 종교학을 가르쳤던 그녀는 2004년, 불행히도 밤에 충분히 잠을 자도 갑자기 낮에 졸음에 빠져드는 기면증에 걸려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휴직계를 내야 했다.

이듬 해 의사로부터 복직허가를 받고 교직에 돌아가려 했던 페리치는 학교에서 이미 다른 사람을 고용했다는 충격적인 답변을 듣고 연방 장애인법 위반으로 학교를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대법원은 ‘성직자 예외법(ministerial exception)’이라는 법리를 내세워 페리치의 소송을 기각시켜 버렸다. 이 법리에 의하면 종교단체의 성직자 채용 문제는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정부가 개입할 수 없기 때문에 부당해고와 같은 연방 노동법 위반 소송 대상도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페리치는 루터란 교육위원회의 구술시험 통과 및 공동의회의 투표를 통해 목사 안수까지 받은 성직자인데 이런 사람이 교회 부속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가당찮은 것으로 판단했다.

성직자 예외법은 올해 7월 결정된 과달루페 성모학교 대 모리시-베루(Our Lady of Guadalupe School v. Morrissey-Berru) 사건을 통해 그 적용범위가 더욱 넓어졌다.

즉 카톨릭계 초등학교 교사 두 명이 고용상 연령과 의학적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은, 그 직원이 성직자인지 아닌지의 기준은 직함이나 종교교육 이수 같은 형식적인 요건보다 담당하고 있는 일의 성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해석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종교 교육은 성직자의 업무 중 가장 핵심적인 일에 해당하므로 카톨릭 학교의 일반 교사들 역시 ‘성직자’에 해당한다고 보고 원고들의 소송을 기각시켰던 것이다.

이 결정으로 종교단체 직원들은 실정법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는데 뾰족한 구제책은 없는지, 또한 이러한 신앙 세계와 현실과의 조화로운 접점은 어떤 것인지 법률가들의 고민이 깊다.

<손경락/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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