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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칼럼] 비움

2020-12-03 (목) 임택규 목사 (산호세 동산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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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크게 두 시기로 나뉜다. 전반부의 ‘채움의 시기’와 후반부의 ‘비움의 시기’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채우기를 시작한다. 육체가 자라고 지식, 지혜가 자라며 친구들이 생긴다.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녀들을 생산한다. 돈과 자산을 모으고 사회적 위치, 자리가 높아가며 명예도 얻는다. 인생 전반부는 대다수에게 플러스, 채움의 시기이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부터 채움은 중지되고 서서히 비워지기 시작한다. 육체가 노화되며 힘과 에너지를 잃어가고 지식, 총기가 사라지고, 돈벌이도 예전 같지 않다. 자녀들은 부모 품을 떠나며 친구들은 하나 둘 세상을 등진다. 명예, 이름이 시들해지고 차츰 세상에서 잊혀진 존재가 되어간다. 결국은 빈손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후반부는 마이너스, 비움의 시기인 것이다.

이렇듯 채움과 비움의 과정이 인생이기에 우리는 채움만이 아니라 비움의 훈련도 해야 한다. 어떤 면에서 생의 더 큰 가치와 아름다움은 비움에 있다. 채움은 한동안 인생을 행복하고 편리하고 기분좋게 만들지만 때때로 욕망을 촉발시키고 다른 사람의 시기를 불러오고 다툼, 갈등을 야기시키기도 한다. 지나친 채움은 인생을 염려, 근심으로 무겁게 만든다. 반면에 비움은 한순간 불편함, 아쉬움을 주지만 주변 사람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얻게 만든다. 또한 인생을 가볍고 자유롭고 건강하게 해준다. 위는 적당히 비워진 상태로 있을 때가 음식물로 포화된 상태보다 훨씬 건강하다.

성경은 바라는 모든 것을 쌓고 모으라고 권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필요하고 무가치한 것들은 포기하고 내려놓고 비우고 부인하라 권한다. 채움이 아닌 비움을 더욱 권한다. 비움의 대가는 단연 예수님이시다. 빌2:5-7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했다. 여기서 ‘자기를 비워’라는 말은 헬라어로 ‘케노시스(kenosis)’이다. 영어 NIV 성경에서는 이를 ‘made himself nothing’, 즉 ‘자신을 무(無)로 만드셨다’ 로 번역한다. 예수님은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이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다. 헌데 주님은 하나님의 본체됨을 비우시고 인간의 모습, 그것도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다. 즉 스스로를 아무 것도 아닌 존재처럼 여기셨다. 주님께서 자신을 비우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 신적 속성을 포기하셨다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온전한 신인 동시에 온전한 인간이시다. 예수님의 생애, 교훈, 말씀, 사역들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신 흔적들로 가득하다. 예수님의 자기 비움이란 신성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을 따라 당신의 권위를 스스로 주장하시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이고 비움의 성경적 의미이다.
요즘같이 자기 영광과 자랑거리를 드러내는 세상에서 자기 비움은 바보소리를 듣기 십상이고 업신여김을 당하기도 한다. 허나 예수님을 닮고 따르려면 꼭 자신을 비우고 부인해야 한다. 리처드 포스터는 <심플 라이프>에서 “우리가 내려야 할 결단은 많지 않다. 사실은 딱 한 가지,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많지 않다. 사실은 딱 한 가지, 욕심을 내려놓고 범사에 그분께 순종하는 일이다”했다.


비우는 삶의 예들이 있다. 불필요한 물건들에 대해 적게 사고 적게 소비하는 것, 행복이 안되는 것들에 대해 적게 벌고 적게 먹는 것, 무가치한 일에 대해 적게 생각하고 적게 활동하는 것, 영적인 일들과 배치되는 세상적 일들을 줄이고 내려 놓은 것이다. 그리고 생각이상의 생각을 않는 것이다.

인생의 의미, 가치는 소유의 채움, 넉넉함에 있지 않다. 오히려 비움에 있다. 비울 때 자신을 발견하고 예수님을 닮아가며 체험하게 된다. 코비드 19 시기는 필요이상의 생각, 일, 스케줄, 소유등을 줄이는 것을 훈련하기에 바람직한 기회인듯 싶다.

<임택규 목사 (산호세 동산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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