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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칼럼] 미신, 맹신, 광신

2020-11-19 (목) 박상근 목사 (새크라멘토 한인장로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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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에서 종교 없는 삶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비록 현대 사회가 급속한 인공지능과 의공학의 발달로 인간이 신의 경지에 도달한 것 같은 착각을 하지만, 아무리 인간 능력이 증가해도 무신론이 종교의 영역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무신론이라는 그 자체가 하나의 종교일 뿐입니다.

문제는 종교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점입니다. 종교가 사회에 선한 영향을 주고 인간 성숙에 도움이 되었을 것 같지만 그리 간단히 결론을 내릴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가톨릭은 전 세계에 걸쳐 사제들의 아동성추행의 짙은 악취로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무소유를 시대정신으로 삼는 불교에서 스타 스님의 넘치는 소유욕이 방송에서 문제가 되자 푸른 눈의 스님은 그를 중이 아니라 사업자, 배우, 기생충에 불과하다고 일갈했습니다.

기독교 또한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사는 것이 힘에 부닥칠 정도로 힘든 세상에서 기독교가 위로가 되기는커녕 걱정거리가 되는 경우가 허다함으로 인해 목젖까지 부끄러움으로 가득 찰 때도 많습니다.


최근에 자칭 독실한 기독교인인 40대 여성이 불교 사찰에 불을 지르는 황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계시였다고 주장합니다. 스님들이 기독교 지도자들이 교인들 교육을 똑바로 해야 한다고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절에 불을 지르면 자기 신앙의 순수성이 증명되고 기독교 복음을 전하는 데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게 과연 성경이 가르치는 제자의 삶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지도자들이 함부로 강단에서 다른 종교에 대해 비하하고 적개심을 심지는 않았었는지 뿌리 깊은 반성이 필요합니다.

얼마 전 프랑스에서는 중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가르친다고 마호메트 풍자만화를 보여주었다가 급진 이슬람교도 청년에게 길에서 참수당해 죽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사건에는 종교의 허점이 없었을까요? 표현의 자유는 소중하지요. 그러나 그게 종교의 영역에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 인구의 5분의 1(15억 이상)이나 되는 회교도들이 신성시하는 마호메트를 우스갯거리로 만들어 모든 회교도들의 종교적 경건성에 침을 뱉고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과연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이겠습니까? 예수님은 결코 문화 우월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개 취급하던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예의를 갖추고 인격적으로 대해주셨습니다.

만약 회교도들이 예수님을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여 아이도 낳고 사는 평범한 인간으로 풍자한다면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 기분이 좋겠습니까? 사실 이런 내용은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란 작품에서 이미 그렇게 다루고 있습니다. 종교가 의미를 가지려면 다른 종교를 존중하는 예의가 있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기독교가 문화 침략자의 모습으로 역사에 기록된 경우가 허다합니다. 세계사에 큰 오점으로 남은 십자군 전쟁의 비극과 폐해는 차치하고라도, 제3세계 선교에 나섰던 많은 선교사들은 식민지 건설의 길잡이를 자처했습니다.

기독교는 불확실한 대상에게 복이나 비는 미신이 아닙니다. 무엇을 믿는지 알지도 못하고 무조건 믿는 맹신도 아닙니다. 자기 신앙의 확신에 의해 세상을 정죄하고 자기 우월감에 빠지는 광신은 더더욱 아닙니다. 지금 코로나 사태로 세상이 더없이 황량해진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의 본질은 온유와 겸손에서 찾아야 합니다.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높여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어떤 상황에서도 미신과 맹신과 광신을 거부합니다.

<박상근 목사 (새크라멘토 한인장로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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