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30년만에 방문한 고국 베트남, 이민자의 소외감과 정체성 질문 차분하게 담아

2020-11-13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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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만에 방문한 고국 베트남, 이민자의 소외감과 정체성 질문 차분하게 담아

킷이 기차를 타고 하노이로 가면서 창밖의 풍경을 응시하고 있다.

고국을 떠나 이국으로 이주한 우리 모두들에게 소속감과 진정한 나의 나라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나게 하는 아트하우스용 우아한 소품으로 연기와 촬영이 보기 좋다. 특히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으로 빅 스타가 된 헨리 골딩의 착 가라앉은 연기가 아름답다.

6세 때 전화를 피해 가족과 함께 베트남을 탈출해 영국으로 이주, 성장한 남자의 30년 후 고국 방문을 통해 문화적 갈등과 자기가 태어난 나라에서 겪는 이질감과 고독과 소외의식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얘기한 작품이다.

캄보디아 계 영국인 감독 홍카우(각본 겸)의 작품으로 매우 사려 깊고 내밀하고 품위를 갖춘 성격 드라마인데 이민자인 감독의 주인공에 대한 배려와 연민이 가득한 가슴이 촉촉한 감동을 가져다준다. 대사보다 분위기에 의존한 조용한 영화로 말레이지아 계 영국인인 골딩이 마치 자기 얘기처럼 영화 속에 깊이 잠겨든다.


킷(골딩)은 어머니의 유해를 들고 그 것을 어머니의 모국에 뿌리기 위해 30년 만에 뒤에 올 형의 가족보다 먼저 호치민시티를 찾는다. 영화 첫 장면에서 모터사이클과 차량들이 뒤엉킨 혼잡함을 공중에서 찍은 촬영이 인상적이다. 이런 번잡함은 킷의 고독과 소외감을 더욱 깊게 반영하고 있다.

호텔에 짐을 푼 킷은 시장을 비롯해 시내를 둘러본 후 먼 친척 리(데이빗 트란)를 찾아간다. 그리고 리와 함께 자기가 어릴 때 자란 곳과 놀던 곳을 찾아본다. 과거에 대한 향수감이 서글프도록 가득하다. 호텔로 돌아온 킷은 남창을 불러 관계를 갖는데 이 장면이 다소 뜻밖이다. 이렇듯이 영화는 킷의 여러 가지 면을 차례로 밝혀준다.

이어 킷은 호텔 바에서 호치민시티에 옷 공장을 설립한 뒤 미국에서 이주한 흑인 루이스(파커 소이어스)를 만나 관계를 맺는다. 둘은 이 후 킷이 하노이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 다시 만나는데 소이어스가 연기를 차분히 하지만 역이 다소 미약하게 그려졌다.

킷은 기차를 타고 하노이를 방문하는데 거기서 미술전문가로 관광 안내원인 린(몰리 해리스)을 만나 베트남의 고유문화에 대해 배운다. 킷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의 인간적인 내면의 면면이 드러난다. 골딩의 연기가 뛰어난데 특히 그의 시선연기가 감동적이다. 힘들이지 않고 작품 속의 주인공이 되어 부드럽고 자비로운 연기를 보여준다. 고국에서의 이국인인 그의 모습이 마치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처럼 느껴진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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