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등] 과
2020-10-29 (목)
동진 스님 (SAC 영화사 주지)
꽃 진 자리엔, 가을이면 어김없이 열매가 맺힌다. 아주 연약한 코스모스도 끝내 씨를 맺고서야 생을 마감한다. 과에 대한 철저한 법칙을 지키는 그 치열함이 눈물겹다. 영화사에도 감, 대추, 쥐똥나무, 야생보리수 열매, 아주까리 등등을 위시하여, 빨갛고 노랗고 까만, 이름 모를 열매들이, 누가 보거나 안보거나 열심히 익어가고 있다. 전에 없던 새 열매를 보게 될 때는, 과는 반드시 있구나, 잘 살아야 한다, 새삼 숙연해 진다.
요즘 사람들은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행을 하면서도, 그 과보가 있음을 믿지 않는다. 이를테면 최소한의 공중도덕, 타인에 대한 배려,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한 기본을 지키지 않고도, 그에 대한 대가 치르길 거부하고도, 당당하다. 일말의 양심도 없다는 듯이, 혹은 뭐가 잘못인줄도 모른다는 듯이. 현대 문명의 개개인에 대한 존중과 권리는 극단 이기주의로 변질 되었다. 한마디로 너야 어찌되든, 굶어 죽든, 추위에 떨든, 나만 잘 살고 보자, 로 행하며 산다. 연기법을 모르면, 얼핏, 그게 잘 사는 것 같아도, 꼭 감옥에 가는 결과를 낳지 않더라도, 과보는 반드시 있다. 꽃 뒤에 반드시 열매가 있듯이. 그것은 신이나 절대자가 있어 그리하라, 고 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철저한 법칙이다. 맑은 물에 푸른 물감을 풀면 푸르러지고 붉은 물감을 풀면 붉어지듯이, 아주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 과는 새로운 싹이 트고, 확장 되어, 씨를 뿌린 자 뿐 아니라 그 곁의 인연에게 까지 영향을 끼친다. 코스모스 씨 한 알이 드넓은 무리를 이루 듯이, 과는 언제 어디서나 역연하다.
<기신론>에 보면 '세상은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고, 마음 일으킨 일은 반드시 그 과가 있다'고 나온다. 사람들은 마음으로만 한 일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 맘에 미운 이는 죽여버리고 싶단 생각도 쉽게 한다. 아무리 세상은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부처님도 과학도 얘기해도, 안 믿기 때문에 그렇다. '일체유심조' 다 잘 알고는 있지만, 아는 것 따로, 언어문자 따로, 진실로 믿진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믿건 안 믿건, 세상은 마음으로 되어 있고, 당신이 일으킨 그 마음은 곧 세상을 움직인다. 그러므로, 당신이 훔칠 생각을 내면, 그 일을 하든 안하든, 세상엔 도둑의 과가 하나 이미 발생한 것이 된다. 미움은 더 큰 미움으로 돌아오고, 메아리 되어 울려퍼진다. 즉, 작금의 모든 세속 햔상은 바로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것을 모르고 믿지 도 않아서, 남을 비난할 줄은 알아도, 이것이 내 잘못이라 책임지려는 이는 없다. 그곳엔 갈등과 반목뿐이다.
지금이 그렇다. 모두가 디프레션 이다. 모든 사람들이 당면한 재난과 여러 사회 문제에 대해, 서로 책임지려 한다면, 당연히 세상은 그런 방향으로, 밝게 변한다. 이전부터 늘 그래왔다면, 작금의 이 코비드19라는 병은 발생하지도, 이렇게 오래, 재난 지경으로 발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과의 법칙은 한 치의 오차도 없다. 지금 저 코비드에 감염되지 않았다고 해서, 무사할 거라고 장담 할 수 없다. 저 바이러스는 이미 '나'의 세상에 발발 하였고, 피할 수 없다. '나 아닌 것이 없다' 이기 때문이다. 해서, 모두가 나보다 너를 걱정하고 하나가 될 때, 이 팬데믹은 사라질 것이다. 모두가 간절히 전체 인연을 걱정하고 치유되길 바랄 때, 그렇게 될 것이다. 치유의 열매가 맺히려면, 모두가 한번은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줘야 한다.
<동진 스님 (SAC 영화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