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중심지 산타클라라 주택가에 한인사찰 대승사가 첫선을 보인 것은 1997년 11월이다. 창건주 겸 초대주지 정윤 스님과 그를 따르는 불자들에 의해서였다. 장소가 장소인 만큼 다른 한인사찰들에 비해 신도들 중 IT전문가 비율이 꽤 높은 도량이었다.
2014년 1월 하순, 정윤 스님이 지병으로 입적했다. 큰 혼란은 없었다. 병마가 깊어진 즈음 정윤 스님이 고향사찰 해남 대흥사에 대승사를 보시하고 만약의 경우 후임주지가 될 설두 스님을 초청해 현지사정에 익숙해지도록 배려하는 등 연착륙 준비를 단단히 해둔 덕이었다.
대흥사에서 파견된 후임주지 설두 스님은 대흥사 시절부터 추진력 좋기로 소문난 스님답게 부임 직후부터 생활공동체형 도량을 청사진으로 내걸고 이전불사를 추진했다. 몇 년 간 눈동냥 귀동냥과 발품 끝에 2017년 8월, 길로이 다운타운과 101 프리웨이에서 그리 멀지 않은 농장지대에 나대지 5에이커를 사들였다. 이듬해 1월에는 바로 그 나대지에 붙은 농지(마늘밭) 8에이커를 추가로 매입했다. 도합 13에이커의 새 부지를 확보한 대승사는 곧(2018년 2월) 임시법당 기공식을 봉행했다(사진). 한두 달 안에 임시법당을 짓고 스님이 그곳에 기거하며 본당과 요사채 등 건축을 진두지휘한다는 계획이었다.
이전불사는 시간문제로 보였다. 양로원식 주거시설이나 경내공원 같은 건 몰라도 적어도 대웅전과 요사채 등은 그해 안에 지어지고 대승사는 본격적인 길로이 시대를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승사 식구들 가슴은 부풀었다. 그러나 행정절차가 찬물을 끼얹었다. 서류 한 장 심사에 한달 두달 석달, 이것 고쳐 제출하면 또 두달 석달 넉달, 저것 고쳐 제출하면 다시 석달 넉달 다섯달... 본당은 고사하고 임시법당 허가조차 나오지 않은 채 시간만 뭉텅이로 흘러갔다. 어느새 두 해가 지났다. 허가는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악재는 홀로 오지 않았다. 산타클라라 대승사를 판 돈은 그 돈대로 다달이 축났다. 2018년 10월에 길로이 새 부지에서 가까운 민가에 세든 뒤 월렌트비만 3천달러 넘는다. 목마를 때 감로수가 돼줄 것으로 기대됐던 대흥사 사정도 여의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대흥사가 본래 덩치에 비해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은 절인데다 지난해 여름에 주지가 교체되는 등 사정으로 대승사가 손을 내밀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게다가 코로나 여파로 대흥사 곳간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내 코가 석자인 셈이다.
그렇다고 마냥 손놓고 있을 설두 스님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부처님 뜻대로”라며 매일매일 이전불사 성공을 위해 기도하고 혹시나 걱정이 돼 묻는 신도들에게도 늘 긍정적으로 답하곤 하면서도 스님은 허가지연이 1년을 넘기자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액션플랜을 준비해왔다. 그첫걸음이 디뎌졌다. 새 부지 두 필지 중 마늘밭 8에이커를 되팔았다. 나머지 5에이커도 팔 계획이다.
그러면 새 계획은? ‘없는 집 짓기’보다 ‘있는 집 사기’로 거의 기울었다. 산타클라라나 산호세로 회귀할 가능성도 없는 것 같다. “거기는 정원사 하나만 있으면 되지, 정원사가 잘하고 있는데 굳이 대승사까지...” 하는 생각에서다. 결론은 길로이나 그 비슷한 입지에서 종교시설로 전환이 쉬운 독립주택을 찾는 것이다. 올 여름 시작된 대형산불로 달라진 생각이 또 하나 있다. “산타크루즈 산불 때문에 여기(길로이)까지 재먼지가 말도 못하고 숨도 못쉴 정도였는데 이런 게 앞으로도 매년 일어난다니, 더 심해진다니” 산중사찰을 피하겠다는 것이다. 대승사의 제2 이전불사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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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