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칼럼] 느림의 시기
2020-10-01 (목)
임택규 목사 (산호세 동산교회 담임)
음악악보에 표기된 용어들 중에 박자의 빠르기를 지칭하는 말들이 있다.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안단테(Andante)란 용어가 대 표적이다. 이는 ’느리게’란 뜻이다. 이를 걸음걸이에 비유하면 걷는 정도의 속도이다. 또 비바체 (Vivace)란 용어도 있다. 뜻은 ‘빠르고 경쾌하게’로 지치지 않을만큼 뛰는 정도의 속도이다. 렌토 (Lento) 라는 말도 있다‘. 아주 느리고 무겁게’란 뜻으로 가듯 멈추듯 매우 천천히 걷는 정도의 속도이다. 사람은 태어나서는 안단테의 삶을 살아간다. 부모의 우산 아래서 모든 것을 공급받으며 서서히 성장해 간다. 그러다가 결혼 해 가정을 갖고 일하고 사회생할 을 하면서 일상이 분주해진다. 비바체의 삶으로 바뀐 것이다. 나이 들어 현직에서 물러나고 육신과 외적활동이 현저히 줄어든 노년기에는 모든 것이 느려지고 더뎌진 채 언어와 행동의 속도가 느림보 수준이다. 렌토의 삶에 들어선 것이다. 인생은 나이에 따라 안단테, 그리고 비바체, 이어 렌토의 과정으로 바뀌며 이어져 간다.
헌데 삶의 속도가 육신의 나이테에 따라서만 빠르고 느리지는 게 아니다. 외부 상황과 여건에 따라서도 변할 수 있다. 지금같은 코로나 시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단테 내지는 렌토 속도로 살아간다. 더 정확히 분류하면 코로나19 전염 초창기에는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모든 사회적, 경제적, 종교적 활동들이 제한되고 멈추어졌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람을 위시 모든 것들 이 일의 범위와 속도를 제한당한 채렌토라는 아주 느린 삶의 탬포속에 구속되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여러 분야에서 제재가 적당히 완화되면서 이제는 걸을 수 있는 정도의 안단데 속도로 돌아왔다. 즉 코로나 이전의 빠르고 경쾌했던 비바체 생활에서 아주 느린 렌토를 거쳐 부분적으로 약간의 속도를 내는 안단데 삶으로 환원된 것이다.
헌데 삶의 속도가 불가항력적 인 환경으로 인해 줄게 되었다고 영혼과 정신의 활동까지 내려 놓 고 멈추는 것은 아니다. 분주하고 바쁘게 움직이며 삶의 속도가 빨 랐던 시기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느림보 시기에는 볼수 있다. 예전에 서울발 목포행 완행열차가 있 었다, 모든 정류장을 멈추며 달리 다보니 목적지까지 10시간 넘게 걸렸다. 헌데 그 시간동안 차창 밖의 풍경을 음미하며 기차안에 서 낯선 사람들과의 낭만적인 교 제도 나눌 수 있었다. 고속열차라 면 얻지 못할 가치들이다. 현대인 들은잘살기위해앞만보고달 린다. 헌데 앞으로 진행하면서 옆 을 놓치고 뒤도 놓친다. 저만치 성공은 보이는데 정작 가까이 있 는이웃은안보이고종종하나 님도안보이신다.이것저것분 주히 다루면서 세상적 경험은 제 법 쌓아가는데 영적 지식과 공동 체삶의지혜는별로습득하지 못한다.
헌데 느림의 시기에는 고속의 시기에할수없고얻을수없는 것들이 가능해진다. 독일 뮨헨대 학교수인A가이슬러교수가쓴 책‘ 시간’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느림은 무엇보다 사랑과 잘 맞 는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은 빠름이지만 사랑에서, 평화에 서 가장 중요한 것은 느림이다.” 우리들이 먼저 추구해야 하는 것 은세상적성공및육신적편리 함이 아닌 사랑이며, 평온함이다. 사랑과 평화는 분주함 속에선 결 코얻을수없다.잠잠히기다리 고참고이해하고용납할때비 로소 얻어진다. 절대 가치는 느림 속에서 실체가 명확히 보이고, 해 서 우리들 소원으로 다가온다. 누 군가가‘ 빠름을 이기는 것은 더 빠름이고 더 빠름을 이기는 것은 더더빠름이아니라의식있고 생각있는 느림이다’ 말했다. 진정 으로 귀중한 것은 차분히 생각하 고 바르게 행하는 방향성이지 무 턱대로 빨리 보고 많이 행하는 속도가 아니다.
벧후 3장 8절에“ 사랑하는 자 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했다. 하나님은 어떤 때는 속 도감있게, 어떤 때는 아주 느리게 행하신다. 지금 주님께서는 하루 를 천년같이 차분하게 진중하게 행하시되 우리와 보조를 맞추시 어 안단테 속도로 진행하신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이 느림의 시기에 익어가는 가을의 아름다 움과 정취를 누리면서 우리들 심 령을 믿음, 소망, 사랑으로 채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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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택규 목사 (산호세 동산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