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리건 시골 여성 소방서장, “내 집 두 채도 전소됐어요”

2020-09-1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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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마 뚫고 이웃 대피 칭송

오리건주 한 시골 마을의 여성 소방서장이 지난 주 맥켄지 지역을 휩쓴 엄청난 산불에 자신의 두 가옥을 잃고도 동분서주하며 주민들을 대피시킨 사실이 알려져 칭송을 받고 있다.

어퍼 맥켄지 소방서장인 크리스티애나 레인보 플루스(50)는 7일 밤 8시30분께 들불이 번진다는 신고를 받고 바이다에 있는 자기 집에서 출동했다. “잘 다녀오라”는 남편의 말을 뒤로 하고 동풍이 강하게 부는 도로를 달리며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고 했다.

그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들불은 맥켄지 하이웨이 양편으로 무섭게 번지고 있었다. 그녀는 자원봉사 소방대원 6명과 함께 블루리버, 바이다, 님로드, 리버그 등 20여 마일의 맥켄지 강에 연한 마을들을 자정을 넘겨 뛰어다니며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그녀는 상부에 지원요청을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당시엔 오리건주의 많은 지역들이 산불에 휩쓸려 경황이 없는 상태였다.

플루스는 경황 중에 가족에게 전화해 지금 당장 차를 타고 대피하라고 일렀다.

그녀의 남편과 두 아들은 애완견 세 마리를 데리고 집에서 뛰쳐나와 이웃들에게도 대피하라고 소리 지른 후 불길을 뚫고 가까스로 탈출했다. 만 하루가 지난 11일 밤 플루스는 이웃 지역 소방서장으로부터 자기 집 두 채가 전소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음 날 오후 바이다에 돌아온 플루스는 자기 집이 잿더미가 된 모습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자원소방대원 4명도 집을 잃었다고 말했다.

가족을 찾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소방서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본능적으로 어깨를 짓눌렀다. 그녀는 같은 처지가 된 소방대원들과 함께 꿋꿋하게 진화 및 구조작업을 계속했다.

불길은 무섭게 번져 일요일인 13일까지 거의 16만2,000 에이커를 태웠고 진화율은 고작 5%에 머물렀다. 바이다에서 사망자 한 명이 나왔고 희생자가 더 늘어날 전망이라고 했다. 플루스는 “모든 주민을 최선을 다해 대피시켰지만 대피하지 못한 주민들이 있었다.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 속에 진화작업을 하기가 너무나 힘들었다”고 말했다. 해마다 9월11일엔 9·11 테러사태 때 순직한 소방대원들의 명복을 빌며 기도했지만 올해는 그날도 잊었다고 덧붙였다.

인근 코티지 그로브의 한 호텔에 대피해 있던 가족과 재회한 플루스는 호텔 내 세탁실에서 소방복을 빨아 입고 다시 진화현장에 복귀했다.

그녀가 갈아입을 속옷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주민들이 보내온 속옷이 700벌을 넘었다. 평소 주민들은 플루스를 그녀의 중간 이름을 따 ‘무지개 서장’으로 부르며 친근하게 대한다. 한 친지는 집을 잃은 그녀와 자원봉사소방대원 4명을 돕기 위해 ‘고펀드미’ 모금 캠페인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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