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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등] 그늘

2020-08-27 (목) 동진 스님 (SAC 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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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온 이래, 이번처럼 더운 여름은 처음이지 싶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백도 이상 되는 날이 2주간 지속되기도 했다. 이럴 땐 한뼘의 그늘도 얼마나 필요하고 고마운지 모른다. 다행히 한낮을 제외하곤, 조약돌 깔린 영화사 마당엔, 그늘이 길게 드리운다. 지난 십 년간 숲을 만드느라 고군분투한 덕분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넓고 넓은 땅에 유칼리툽스 몇 그루, 마당 한 가운데에 덜렁, 야생 단풍나무 한그루 있는, 그런 곳이었다. 절을 살 때는 겨울이었지만, 이미 뜨거운 여름 태양이 보였다.

비만 오면 무조건 나무를 심었다. 몰라서 할 수 있었다. 여기 땅이 여름이면 돌처럼 딱딱해지는 줄 알았으면, 시도도 안했을 것이다. 잘 자라다가도 여름이면 죽는 나무를 여럿 치르고 나서, 땅의 성질을 알게 됐다. 나무와 작물을 심고 가꾸는, 이곳 식의 방법을 처음엔 몰랐다. 영화사 나무들은 그때 아마 어리둥절했을 거다. '우릴 이렇게 심으면 안되는데...' 지금은 그래서 그들한테 감사하고 미안하다. 무식한 스님 만나 돌덩이 같은 땅에서 살아남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들이 십년 간 자라, 마당 한가운데 길고 넓은 그늘을 만든다. 조석으로 서쪽, 혹은 동쪽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빛을 없애자고 나무를 심었는데, 그 빛으로 인해 그늘이 생긴다. 빛이 없으면 저 그늘이 없다. 그늘이 짙은 건 저 빛 때문이다. 그늘과 빛은 결국 하나인 것이다. '불이' 이다. 물론 그 그늘을 만든 건 나무와 그 나무를 심은 노력 덕이지만, 저 빛이 아니라면, 그 노력도 없었을 것이다. 빛과 그늘의 평등성에 대한 깨침이 있던 부분이다. 이 둘이 하나라는 점에서 보면, 빛만 너무 많이 있어도 안 좋고, 그늘만 많이 있어도 안 좋을 건 당연하다. 한 쪽이 치우치기 때문이다. 겨울, 여름보단 봄, 가을이 평화로운 것처럼 균등이 바람직하다.

'이익과 손실, 행복과 불행, 칭찬과 비난, 명예와 불명예, 모든 세속적인 조건들은 바람직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 늘 함께 온다.' 이 중의 말이 아니고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다 좋은 건 없다. 호불호 사이에서 균형과 중도를 찾는 것이 참 만족이다. 세상은 늘 빛과 그늘로 온다. 문제는 깨닫지 못하고 살면, 늘 한쪽만을 본다는 것이다. 행복을 원하지만 불행을 싫어하고, 명예와 부를 원하면서 불명예와 가난은 싫어한다. 그런 것이 불만족한 삶을 만든다. 이 세상은 누구에게도 고통스럽지 않다. 고통을 싫어하면 고통스러울 뿐이다. 불행을 싫어하고 행복만을 추구하면 불행하다. 비난이 싫으면 칭찬에도 덤덤해야 한다.

'대지에 달콤한 것이든 더러운 것이든, 어떤 것을 쏟아부어도, 미움도 나타내지 않고 애정도 나타내지 않듯이, 좋거나 기쁜 것에 대해 그대들도 항상 평정심이 되어야 한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바위처럼.' 법구경의 이 말씀을 이미 알고, 좋은 그늘도 반드시 안 좋은 때가 있음을 이 중은 다행히도 알아서, 상록수보다는, 겨울이 되면 그늘을 날려버리는, 낙엽 지는 나무들을 주로 심었다. 늘 푸르기만 한 나무가 더 좋은 건 결코 아니다. 한쪽으로 치우침은 그 곳이 어디든, 다른 쪽의 부족과 불화를 낳는다. 이 맥락에서 볼 때, 날씨를 비롯, 작금의 그늘진 여러 사회 현상들은 어쩌면, 다수가 오랫동안. 밝은 시회에 대해 외면하고 산 때문은 아닌지, 함께 깊이 성찰해 봤음 한다. 그늘을 보면 빛을 알고, 빛을 보면 그늘을 볼 수 있는 통찰. 이 중도 속에 마음의 평정과 평화가 있다.

<동진 스님 (SAC 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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