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칼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
2020-07-16 (목)
박상근 목사 (새크라멘토 한인장로교회 담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 흔히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으로 알고 있는 이 문구는 17세기 초 영국 성공회의 신부이자 시인이었던 존 던(John Danne)의 시의 제목입니다. 존 던은 이 시에서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전체의 일부이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인간이란 외따로 떨어진 섬 같은 존재가 아니라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존재임을 설파한 시입니다.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특히 헤밍웨이는 이 짧은 시 한편에서 영감을 얻어 그 유명한 소설을 집필했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존 던의 이 시를 가장 잘 구현한 나라였다고 믿었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이었고 등대 역할을 해왔습니다. 비록 이 땅이 부끄러운 노예의 역사와 인종차별의 어두운 과거에도 불구하고, 정의와 진리를 위해 싸우는 나라라고 믿어왔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한 동양인의 너무 순진한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의 대혼란 앞에서 미국은 완전히 발가벗겨져 그 속살을 노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사태는 사람들을 무질서와 이기심과 탐욕의 구덩이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이 심각한 전염병이 유령처럼 전국을 뒤덮고 있습니다. 코로나 감염자와 함께 파티를 열어 가장 먼저 감염된 사람에게 그날 모인 입장료를 상금으로 주는 코로나 파티가 놀이처럼 번져가는 장면은 이웃의 안전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이기심과 개인적인 만용의 극치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일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미국 교육 시스템의 붕괴로 보입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감염이 되었고 한 30대는 코로나 파티로 감염되어 자신이 실수한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해하기 힘든 젊은이들의 만용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인구 1억의 베트남은 지금까지 코로나 감염환자가 단 370명에 불과하고 지난 몇 주 동안은 감염자가 1명도 없습니다. 미국의 만분의 1에 불과합니다. 만약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베트남처럼 했다면 코로나는 벌써 자취를 감추었을 것입니다. 인간들의 어리석음과 탐욕이 코로나를 확산시킨 가장 큰 원인입니다.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마스크 하나만 제대로 쓰면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고 사회의 안전도 속히 이룰 수 있을 텐데, 죽어가는 사람들 앞에서도 마스크를 거부하는 그들의 아집은 광신도처럼 보였습니다. 이 모든 혼란이 백성들의 생명과 안전보다는 자기 개인의 얄팍한 욕망에 눈이 먼, 한 정치지도자의 저능한 코미디 같은 행보로 인함이고 미국은 심각한 고통 중에 있습니다.
그 와중에 치명타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동양인들이 퍼뜨린 것처럼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증오범죄입니다. 단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남녀노소 구분 없이 백주에 테러를 당하는 일들이 수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가해자는 백인뿐만 아니라 흑인, 맥시카노 가릴 것 없이 함께 동참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저희 교회 70대의 성도님도 10년 넘게 운동하러 다니든 동네의 공원에서 한 덩치 큰 흑인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해 골절상을 입고 기절을 할 정도의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아직도 완전한 회복을 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상처 입고 피해를 입은 것은 한 동양인이 아니라, 바로 자유와 정의와 성공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아메리카의 몰락이라는 사실입니다. 존 던의 시는 이렇게 끝납니다.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 전체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를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해서 울리는 것이니!” 아메리칸 드림의 종말을 알리는 조종이 슬프게 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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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근 목사 (새크라멘토 한인장로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