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코로나 질 병은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와 환경오염, 그리고 인간의 극단적 이기심과 탐욕의 결 과...전 세계의 대처(對處)는 속수무책 (束手無策)이고, 과학기술의 무력(無力)함이 드러나면서 동양의 정신문 화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 달 미뤄 봉행한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부처님오신날을 여드 레 앞둔 지난달 22일 대한불교조계 종 종정 진제 스님이 발표한 봉축법 어 중 일부다. 코로나 사태 이후 이 런 식의 진단과 처방이 쏟아졌다. 하 기에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받아들 이기 십상이다. 일일이 검증하면 사 정은 달라진다. 도무지 한 마디도 입 증된 게 없다. 입증될 것이 없다 해 도 무방하다.
‘코로나 질병은...이기심과 탐욕의 결과’라는 대목은 무서운 괴질의 대 유행이나 인재든 천재든 대형 재해 나 사고가 발생하면 흔히 등장하는 진단이지만 입증도 어렵고 반증도 어려운 관용적 수사다, 겉말이야 그 래도 속말은 인간의 반성을 촉구하 는 것이니 굳이 시비할 건 없겠지만.
말줄임표 다음에 이어지는 건 실 로 문제다. 전 세계의 대처가 속수무 책이라니, 가당치 않은 말이다. 더 효 율적인가 덜 효율적인가 차이는 있 어도 코로나 사태에 속수무책인 나 라는 없다. 과학기술의 무력함이 드 러난 것도 아니다. 의학을 포함한 과 학기술 덕분에 지금 이 정도나마 컨 트롤이 되고 있고 멀지 않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비드19)를 다스리 는 백신이 나오리란 희망을 갖는다. 이것과 관계없이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병과 약은 2인3각 달리기를 하 듯 거의 ‘나란히 끝없이’ 진화한다 는 점이다.
동양의 정신문화가 주목받고 있 다는 것도 근거가 희박하다. 그 이전 에 ‘동양의 정신문화’ 운운 자체가 허망하다. 이런 말을 즐겨 쓰는 이들 이 갖기 쉬운 ‘서양=물질문명, 동양 =정신문화’ 나아가 ‘저급한 물질 vs 고상한 정신’ 같은 이분법적 사고 내 지 정의, 이것 역시 엉터리임은 서양 사나 서양철학을 조금만 파보면 금 방 알 수 있다. 당장 개개인의 인권 과 자유가 보다 더 보장되고 존중되 는 곳이 대체로 서양인지 동양인지 잠시만 생각해보면 된다.
더군다나 종정 스님의 이런 진단 은 그 다음에 이어지는 “천지가 나 와 더불어 한 뿌리요, 모든 존재가 나와 더불어 한 몸...이웃 없이 나만 홀로 존재할 수 없고, 땅을 딛지 않 고 살아갈 수 없다. 만물은 나와 더 불어 둘이 아니”라는 말의 진의를 무색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조계종 최고어른인 종정예하가 지금 바깥세상에 대고 맑고 고운 말 내지 지당한 쓴소리를 할 계제 가 아니라는 점이다. 조계종단 내부 자정, 특히 윗물부터 자정이 시급해 서다. 우선 종단행정을 총괄하는 총 무원장 출신 두 스님이 불미스런 일 에 연루됐다. 월주 스님과 자승 스 님이다.
1980년 총무원장 재임시 10.27법 난으로 신군부에 의해 강퇴당하고 (원장직 사퇴) 1994년 종단파동 때 원장에 복귀해 3선을 꾀하다 사부대 중에 의해 강퇴당했던(후보직 사퇴) 월주 스님은 깨달음의 사회화를 주 창하며 일제하 종군위안부 피해여성 들을 위한‘ 나눔의집’과 지구촌구호 활동을 위한‘ 지구촌공생회’ 등을 운 영했으나 나눔의집 보시금을 의뭉스 럽게 집행했다는 의혹으로 사퇴압력 을 받고 있다. 얼마 전에는 사회단체 로부터 고발까지 당했다. MBC피디 수첩을 통해 나눔의집과 월주 스님 의 의혹이 방영된 뒤 사회적 파장이 커지자 월주 스님측은 월주 스님이 1992년 나눔의집 설립 당시 사재 4 억5천만원을 출연했다는 등 진화에 나섰으나 이마저 거짓이라는 반론이 제기됐다.
2009년 가을부터 2017년 가을까 지 8년간 총무원장을 지낸 자승 스 님은 원장 이전 룸싸롱 출입사건부 터 시작해 재임중 이권개입(속칭 감 로수비리, 달력비리 등)과 독단적 계 파행정 등으로 원성을 샀는가 하면 이에 저항하는 종무원들을 해고 등 징계했다가 최근 법원으로부터 부당 징계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대 한불교조계종이 아니라 대한불교자 승종이란 자조섞인 말이 나돌 정도 로 막강한 영향력을 여전히 행사하 고 있다고 한다. 이번 법원 판결과 관련해 조계종 민주노조가“ 자승 전 총무원장의 상왕정치는 막을 내려야 한다”고 날을 세운 것이 ‘물러난 자 승의 물러남 없는 종권’을 대변한다.
그럼에도 그는 퇴임 직후에는 백 담사 무문관행으로, 지난 겨울에는 서울 외곽 한 공사장 빈터에 임시로 세운 천막선원에서 90일간 자파스님 8명과 함께한 동안거로 언론의 주목 을 받았다. 얼마 전에는 천막선원 동 안거를 다룬 다큐영화를 선보이더니 이번에는 부처님의 길 따라 인도 만 행을 준비한다며 오는 7월부터 하루 30km씩 연습에 들어간다는 기자회 견까지 했다. 북한식 표현을 빌면 삶 은 소대가리가 하늘을 쳐다보고 웃 을 일이다. 머물지 않고 늘 떠나는 삶에 특히 주목하며 불교를 극찬했 던 철학자 니체는 법력 수십년차 승 려들의 만행연습 계획을, 그것도 기 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계획을 어떻 게 받아들일까.
<
정태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