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2020-06-08 (월) 최효섭/ 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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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슨의 과학소설에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가 있다. 지킬은 자기를 이중인간으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낮에는 의젓한 지킬 박사, 밤에는 야수적인 괴물 하이드가 된다. 그리고 새벽이 되면 다시 지킬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새벽 거울 속에 드러난 자기를 보고 놀라버린다. 온 몸이 지킬로 돌아왔는데 한 쪽 손만이 야수 같이 험하고 털이 난 하이드의 손으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작가의 의도는 한 사람 속에 지킬과 하이든이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과 악을 모두 가지려고 하면 악이 선을 눌러 모두를 악하게 만든다. 바울도 “내가 원하는 선은 행치 않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한다”고 스스로의 약함을 한탄한 일이 있다.

사람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스타형(Star)과 종형(Servant)이다. 스타형은 자기를 드러내고 자랑하는 인간이다. 종형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섬기는 인간이다. 어느 쪽 인간이 될지는 본인이 결정한다. 인류를 진정으로 섬기는 사람들은 종형의 사람들이다. 얻는 것도 적고 이름도 나지 않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어 인간 사회는 발전한다.

몇해 전 뉴욕에 귀여운 도둑이 등장했었다. 작은 은행에 나타나 여직원 앞에 선 꽃다발을 든 미남자 도둑이었다. 꽃다발 속에 권총이 보였다. 도둑은 “조용히 100불 짜리만 내놔!”하고 속삭였다. 여직원은 꼼짝 없이 돈을 내놓아 털렸지만 이 대범한 도둑은 얼마 뒤에 체포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꽃다발 속의 권총도 장난감이었다. ‘꽃다발을 든 도둑’, 겉은 아름다우나 속은 엉큼한 인간의 이중성을 드러낸 도둑이다. 정직하여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세상은 안 오고 말 것인가?


남의 것을 가져가면 안된다는 것은 어려서 부터 배운 교훈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교훈을 어른이 될수록 더 지키지 않는다. 도둑질은 돈과 물건 뿐이 아니다. 남의 시간을 도둑질 할 수 도 있고 임금을 부당하게 지불함으로써 남의 노동력을 도둑질 할 수도 있다. 많은 가짜 물건이 나돌고 있는데 이것들도 모두 도둑질에 해당된다. 5,000년 전에 나온 모세의 십계명에도 도둑질을 죄로 정하였다. 도둑질은 한 인간 속에 정직한 자와 도둑질 하는 나쁜 인간이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자기를 다스릴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많은 수양을 통하여 이런 힘을 가질 수도 있으나 사람은 약하여 이 힘을 발휘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종교의 힘이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신이 나를 지켜보고 계시다는 믿음이 있으면 충분한 자기견제의 힘을 가질 수 있다. 나의 양심을 믿는다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양심이 마비될 때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이란 말이 있다. 바르게 사는 사람은 큰 길로 다닌다는 뜻이다. 큰 길이란 떳떳한 길을 가리키며, 그렇지 못한 길에 샛길, 뒷길, 곁길,지름길 등이 있다. 이 모든 길의 결과는 좋지 않다. 사람은 순리를 따라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한다.

작년 크리스마스 계절에 영국 브리지드 마을에서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아주 잘 생긴 청년이 혼자 사는 95세의 토마스 부인 집을 방문하였다. 할머니가 외롭게 보여 크리스마스 캐롤을 몇 곡 불러드리려 고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좋은 소리로 캐롤을 불렀다. 감동한 할머니는 잠간 노래를 쉬고 차를 한 잔 마시고 부르라고 하며 부엌에 간 사이에 이 청년은 팔찌 같은 귀금속들을 챙기고 사라졌다. 할머니는 패물이 아니라 크리스마스를 도둑맞았다고 한탄하였다. 노인의 약점을 노린 악질적인 도둑이었다.

신문에 보도되는 나쁜 짓만도 헤아릴 수가 없다. 인간사회에서 벌어지는 악과 선의 교차는 정신을 차릴 수도 없을 정도이며 끝 없이 계속되는 악행들은 정말 속을 뒤집는다. 이런 세상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최효섭/ 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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