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국제전화

2020-05-26 (화) 08:09:53 구인숙 / 메릴랜드 연합 여선교회 증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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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았다 떠 보니 갑자기 세상이 바뀌었다. 창살없는 감옥같은 집에 갇혀 그동안 못했던 집안정리와 마음 정리, 기도하고 설교도 듣고…또 어느 한 드라마를 보고 있던 중 머릿속에 한 옛날 일들이 필름처럼 스쳐왔다.
드라마는 1935년쯤 스페인 전화국 교환수로 일하는 여성들의 기막힌 사연들이었다. 드라마 속 교환수들이 부지런히 전화를 연결시켜 주는 것을 보며 내가 미국 온 뒤 처음 어렵사리 우리 어머님께 국제전화를 걸었던 생각이 났다.
1974년 어느날 “어머니 저예요. 우시지 마시고 말씀 좀 하세요…. 이 전화 비싼 거예요 네?…” “응, 그리고, 그리고, 너 밥은 잘 먹고 지내냐?… “예, 예, 예… 근데 어머니 다른 말 좀….”
결국 우리 모녀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몇분 동안 울다가 전화가 끊겼다. 그 당시 국제전화를 하려면 교환을 거쳐야 했고, 요금도 엄청 비쌌었다. 그때 내 주급이 80불이었고 전화 한번 하면 20불 이상 나왔으니, 꼭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해서 메모를 해두었다가 벼르고 날을 잡아 전화를 했는데, 막상 어머니 음성이 들려오면 목이 메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요즘같이 아이폰이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참으로 복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우리 이민 2 세들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 않은가. 내 손녀들도 가끔 그 옛날 재미 있었던 이야기들을 해주면 입부터 딱 벌리며 “와, 와… 정말? 근데 할머니 어떻게 살았어?”하며 웃어댄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나는 이 곳에서 강산이 네 번 이상 바뀔 만한 세월을 살아왔다.
언제나 나보다 더 불우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늘 감사하려고 애를 썼다. 즐거우면 웃고,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고, 화나면 울고 그러다 못 견디게 슬프고 화나고 외로울 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 리가 한 말을 나에게 들려준다. “너에겐 반드시 내일이 있어. 일어나 어서 얼굴 들고 어깨 펴고 뚝” 그리고 나서 거울을 보며 억지로 씩 웃었다. 활짝 웃고 나면 어딘지 모르게 새 힘이 솟아났다.

<구인숙 / 메릴랜드 연합 여선교회 증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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