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제발 싸우지 말자

2020-05-18 (월)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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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0년 동안의 인류의 역사는 싸움의 역사였다. 2차 대전 후만 치더라도 100개의 나라에서 100개의 군사 분규가 있었고 500만명이 전쟁에서 죽었다. 세계제1차대전에서만 1,000만명이 죽었으며 2차대전, 한국전쟁, 월남전쟁, 걸프전쟁에서 약 5,000만명이 희생되었다.

인류는 처참한 싸움을 하면서 그런대로 두 가지의 귀중한 진리를 배웠다. 첫째는 이데올로기(이념)보다 자유가 낫다는 것을 배웠고, 둘째는 대립보다 공존이 낫다는 진리도 배웠다. 귀뚜라미를 연구한 학자는 그들의 울음소리에 뜻이 있음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들의 울음소리는 3악장(樂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악장은 ‘영토선언’으로 자기의 존재를 과시하는 선언이고, 재2악장은 ‘투쟁’으로 자기의 용기를 과시한다. 그러나 가냘픈 제3악장의 주제는 ‘사랑’으로서 그렇게 울 때는 가까이에 암놈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사람처럼 육탄전을 하지 않고 사랑으로 대결한다는 것이 귀뚜라미에게도 배울 점이 있지 않은가!

인간들은 계속 싸우는데 전쟁을 하는 다섯 가지 p가 있다. ‘과시의 욕망(passion for pageantry), ‘소유의 욕망’(possession), ‘이익의 욕구’(profit). 보호의 욕구(protection),애국의 욕구(patriotism) 등이다. 그런데 정말 필요한 여섯째 p가 있다. 그것은 peace 곧 평화의 욕구이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바웬사는 수상식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인류의 문제가 반대자를 제거하여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 한다. 폭력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메시지도 오직 한 마디, “비폭력만이 인류의 살 길이다.”는 것이었다. 종교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싸움이 얼마나 많았는가. 인도교와 힌두교의 싸움, 중세기의 100년 전쟁 등이 모두 신앙인들의 싸움이었다.

미국 연합감리교회는 모든 목사들에게 한 권의 책을 권고한 일이 있었다. 그 책은 ‘과거의 교회와 미래의 교회’이다. 저자인 Mead 목사는 “서구교회 퇴조의 원인이 교회에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초대교회의 부흥은 강력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밖으로는 탄압, 안으로는 이단 등 싸움이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콘스탄틴 황제가 이교도들을 강제로 기독교화 시키면서부터 교회는 타락의 길을 걸어 쇠퇴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비하면 한국교회는 축복을 받았다. 이조의 가톨릭 대박해, 일본의 조선교회 박해, 북한 공산주의의 기독교 박해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남한으로 이주하였다. 교회 부흥에는 언제나 박해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미국 동북부에서 대구를 기차로 수송할 때 물탱크에 넣어도 살이 허벅허벅 하여 제 맛이 안 났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새 아이디어를 냈는데 물탱크 속에 메기를 몇 마리 넣었더니 대구들이 메기에게 쫓겨다니느라 부지런히 움직여 좋은 맛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적이 있어 유익할 수도 있다.

구약성경에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급 이야기가 나온다. 이집트에서 노예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그곳을 탈출하여 고향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이야기인데 직행하면 한 달이면 갈수 있는 길을 40년이나 걸려서 간다는 고통의 역사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훈련시켜 굳은 믿음을 가지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으로 설명하고 있다. 확고한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련을 거쳐야 하였던 것이다. 적도 있어야 하고, 많은 장애요소도 훈련을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었던 것이다.

산고(産苦)를 겪은 산모는 다시는 아이를 안 낳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같은 여성이 둘도 낳고 셋도 낳는다. 그것은 ‘뒤의 기쁨’이 ‘앞선 고통’을 잊게 하기 때문이다. 환희는 아픔을 삼키는 마술이다. 오늘의 진통은 내일의 행복을 약속한다. 현재의 아픔 없이 미래의 기쁨을 기대할 수 없다고도 말할 수 있다.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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