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일상에서

2020-05-14 (목) 김자원/뉴욕불교방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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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드19 Pandemic 상황. 자가격리. 일상이 단순해졌다. 집안 구석구석 치운다. 쉬엄쉬엄 했던 옷장과 책장정리. 부엌, 냉장고, 집안팍 청소가 한달만에 대충 끝났다. 밤시간에 출출해서 먹을거리 찾아 부엌에 들렀는데 까맣게 그을린 주방기구가 눈에 들어온다. 출출함은 어디가고 밤중에 주방기구에 검게 낀 그을음을 닦는다. 검은 테가 아무리 닦아도 그대로다. 포기하려다 작은칼을 꺼내 그을음을 깍는다. 칼자국 지나간 곳에 하얀 본색을 내보인다. 깍고 문지르고 베이킹 소다와 식초를 넣고 삶아내어 밤을 새며 닦았다. 조금씩 원래 모습이 나타난다.

처음 청소로 시작했다. 같은 손놀림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무엇이 음식 하는데 장애 없는 주방기구 겉을 닦고 있는가라는 이유에 집중하고 있는 자신이 보인다. 아침햇살이 창문에 드리울 쯤에 떠오른 ‘본래면목’ 이라는 네 글자. 가슴이 환하게 밝아온다. 웃음이 번진다. 반짝이는 주방기구의 본래모습은 자신에게 수행의 길은 어떻게 가야하는지를 보여줬다. 구도의 길 포기하지 않고 이탈하지 않고 묵묵히 집중해 가다보면 본래면목이 들어난다는 것. 결과의 기쁨도 함께. 어찌 구도의 길 뿐이랴. 삶의 모든 순간을 온전한 내 것으로 살아가려면 본래면목 찾는 마음으로 매사에 임해야 하리라.

번잡함이 한가함으로, 바쁘게 지내던 조급함이 게을러도 괜찮은 여유로움으로 바뀌었다. 한가함과 여유의 시간을 지낸다. 무료하고 변화가 없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다. 일상의 움직임과 마음의 움직임을 살펴보게 되니 모든 게 예사롭지 않다. 무심코 지나쳤을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나를 일깨운다.
지인이 카톡으로 ‘문삼석 시인’의 시 ‘그냥 ‘ 을 보내왔다. 아기 업은 수건 쓴 여인의 모습과 함께 적힌 시 ‘ 엄만 내가 왜 좋아? ? 그냥… 넌 왜 엄마가 좋아? ? 그냥…’이라는 짧은 시. ‘어머니날’ 맞아 아가랑 엄마의 대화에서 번지는 사랑을 나누고 싶어 보내온 것이다.


“그래, 우린 그냥 그렇게 사는거야. 그치. 조건없이 그냥 행복하게. 그냥 속엔 사실 많은 ‘말과 마음’이 담겨있지. 그냥은? 그래서 그냥이 아니라는 것. 몇 억년의 얽힌 인연의 깊은 샘물이 그냥 와 주지 않으니까. 우리의 인연이 고마운거야.” 라는 답을 보냈다.
느낌의 감각기관도 여유로워서인가! 지금의 모든 인연에 고마움의 전율을 느낀다. ‘인연’이라는 단어에 신비한 힘이 있다. 역사가 있다. 소용돌이와 폭풍 눈보라 비바람 그리고 잔잔한 봄 아지랑이 같은 관계의 모든 인연의 숲이 한세상 살아가는데 각각의 역할로 내 업을 장식했다. 그 업장의 창고는 그래서 풍요롭다. 이 세상구경 마치고 가는 날엔 텅 비워놔야 자유로운 영혼이 된다는 것 알고 있다.

삶의 명분은 의식주 해결이 주된 임무라는 것 새삼 깨닫는다. 갓 돋아난 미나리, 신선초, 쑥, 도라지 등으로 마련된 식단이 풍성하다. 자가격리 중 별장으로 간 지인은 집 근처에서 따 모은 ‘명이’ (산마늘)를 나눠 먹으라며 한보따리 보냈다. 먹거리 나누는 인심은 훈훈하다. 사랑이다. 죽염으로 담근 된장을 통도 크게 큰병에 담아서 보내온 지인. 손수 담근 고추장 퍼준 친구. 한국에서 엄마가 보낸 고추장, 청국장, 김 그리고 말린 고사리를 살며시 갖다 놓는 이도 있다. 나누는 곳마다 고마움이 감동으로 돌아와 기쁨의 에너지가 주위에 퍼지고 있다. 우리의 일상이 이처럼 화려하게 펼쳐져 있음을 한가함 속에서 가슴 설레며 보고 있다.
자연의 흐름은 꽃나무마다 꽃을 활짝 피우고 나뭇잎새는 초록의 봄처녀모습이다.

<김자원/뉴욕불교방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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