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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코로나시대의 부처님오신날

2020-05-14 (목) 광전 스님 (SF여래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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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심지어 시간까지 정지해버린 느낌이다. 매일 걷는 Pacifica 산책길엔 활짝 핀 야생화로 극락세계가 따로 없다. 이렇게 찬란하고 아름다운 봄날인데, 봄이 와도 봄이 온 줄 모르고 꽃이 피어도 꽃이 핀 것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봄이 와도 봄이 아닌 그야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전염병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면서 두어 달가량 집 밖을 마음대로 나가지 못한 사이에 화사한 봄꽃들은 봐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 피었다가 속절없이 혼자 졌다.

이제 사회적 거리두기가 다소 완화되면서 그간의 시간적 공백을 메워 준 것은 고맙게도 음력달력이었다. 달이 차고 기움을 기준으로 만든 음력은 태양력 365일에 비해서 일 년에 10일정도 날짜가 모자란다. 그래서 3년에 한 번씩 윤달을 만들어 끼워 넣는 보완을 통해 공존해왔다. 그런데 윤달을 특정 달에 고정시키지 않았다. 윤삼월이 되기도 하고 윤오월 혹은 윤구월일 때도 있다. 물론 그것을 정하는 것은 전문역학자의 몫이다. 올해는 윤사월이다. 다시 말하면 사월이 두 달인 셈이다. 다행스럽게도 올해는 윤4월8일이 부처님오신날이 되었다. 바이러스의 기운이 약해질 무렵 당신의 생신을 이렇게라도 챙길 수 있게 된 것이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고국인 한국의 코로나19 확장 원인이 특정종교단체로 밝혀지면서 사회적 눈총은 모든 종교계로 옮겨갔다. 이후 종교의 자유보다는 국민의 안전이 더 우선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한국의 방역정책은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전염병은 애초부터 종교적 신념이 끼어들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코로나는 의사와 간호사에게”라는 말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빛을 발했다. 양력달력에서 세기를 가르는 기준인 BC는 이제 ‘Before Corona(코로나 이전)’으로 불릴 만큼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바뀔 것이라는 ‘의학적 예언’에 따라 코로나 원년인 2020년은 ‘탈종교 시대’의 원년까지 겸하게 될 것이다.


예전엔 일상을 벗어나는 게 꿈이었는데 이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꿈이 되었다. 이제 여행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유명 관광지 주민조차 외지인이 오는 것을 꺼리는 세상이 된 것이다. 비대면(非對面)접촉이 보편화되면서 학교의 인터넷 강의는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대중화되고 있다. 강의내용이 공개되면서 강사의 실력까지 알게 모르게 드러난다. 종교계 역시 인터넷을 이용한 설법 강론 설교 공개가 더욱 속도를 낼 것이다. 따라서 종교인의 안목 또한 만천하에 노출될 날도 멀지 않았다.

어쨌거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인간들의 활동이 줄어들면서 하늘이 파래지고 공기가 맑아진 것을 누구나 느낄 정도가 되었다. 이유는 이동수단인 비행기와 자동차 등 탈 것이 내뿜는 매연이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달 만의 바뀐 현상이다. 자연의 회복력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빨랐다.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연기(緣起)의 법칙’이라 부른다. 이런 평범한 상식을 가르치려고 2600여년 전 음력 4월8일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이제 보름 남짓이면 윤사월 초파일이다. 하지만 이곳 베이지역은 아직 교회나 절 같은 종교단체의 집회를 공식적으로 허용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여래사도 정부시책에 순응하고 더불어 대부분이 연로하신 신도들의 건강을 배려해 예전처럼 공식적인 부처님오신날 법요식은 자제하고 토요일(30일)과 일요일(31일)을 신도들에게 개방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부처님께 참배드리고 아기부처님 목욕시켜드리는 소박하면서도 절제된 부처님오신날을 준비중이다.

부디 부처님의 가피로 모든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광전 스님 (SF여래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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