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코로나19로 본 ‘국가비상사태법’

2020-04-10 (금)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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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패닉상태에 빠졌다. 이 호흡기 질환은 우선 백신과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은 데다 빠른 전염성과 높은 치사율, 급증하는 환자에 비해 전문 의료 인력과 시설마저 부족하여 지구촌을 전대미문의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코로나19가 중국을 시작으로 올림픽 개최예정지인 일본, 한국, 이란, 이탈리아, 미국까지 겉잡을 수없이 확산되자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3월 12일 ‘팬데믹(세계적 유행병)’을 선언하였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이 바로 다음 날 미국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 이 선포를 근거로 연방 재난관리청(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은 각 주에 약 400억달러의 재난기금을 지원할 수 있게 됐으며 보건복지부(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는 의료진의 면허범위 확대를 비롯 원격진료, 병실 상한해제 등 각종 법적 규제를 풀어주는 일이 가능해졌다.

전쟁이나 천재지변 발생 시 선포되는 미국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는 1976년 제정된 국가비상사태법과 1988년 제정된 스태포드 재해구조 및 긴급사태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물론 이 법의 제정 이전에도 미국 대통령들은 국가적 위기 때마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하곤 했다.


한 예로 남북전쟁 초 남부군 핵심지역인 버지니아 주 인접 워싱턴 D.C 역시 다수의 노예제도 찬성파로 혼란이 극심해지자 링컨 대통령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이들을 기소도 하지 않고 바로 체포, 구금했던 것이다.

이후 세계 1, 2차 양 대전과 한국전, 베트남전 등을 치르면서 비상 선포에 따른 대통령의 권한이 무소불위로 막강해지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의회가 강구한 것이 바로 ‘국가비상사태법’이다. 미 상원에 따르면 이 법 제정 전 이런저런 구실로 국가비상사태를 발동할 수 있는 연방법 조항이 470개나 되었다고 하니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발동이 가능한 셈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국가비상사태법은 입법취지와 달리 실패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왜냐하면 이 법의 가장 핵심은 의회 투표로 대통령의 비상사태 선포를 무효화시키는 조항이었는데 나중에 대법원이 미국이민국 대 차다(INS v. Chadha) 사건을 통해 위헌 판결을 내림으로써 이 조항 자체가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이 대법원 판결 이후 의회가 비상사태 결정을 뒤집으려면 먼저 상·하 양원을 거쳐 무효화 법안을 제정해야 하고 대통령이 이에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다시 양원에서 각각 2/3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게 된 것이다.

1976년 법 제정 이후 미국 대통령들은 총 61번이나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는데 클린턴 대통령이 17번으로 이 법을 가장 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흥미로운 점은 이란과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 등도 바로 이 국가비상사태 법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2020년 4월 현재 세계의 경찰국가 미국은 하루도 바람 잘 날 없이 여전히 크고 작은 30여 건의 국가비상사태가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한편 1988년 제정된 스태포드 법은 천재지변 시 연방 재난관리청이 28개에 이르는 정부기관과 NGO등을 통해 재난지역에 자금과 물자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해주는 법이다. 연방정부 지원책을 적절하게 처분하고 배분하는 것은 각 주와 지방 정부의 재량이다. 이 법도 국가비상사태법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비상사태 선포 전 재난 해당 주지사가 먼저 연방정부에 도움을 요청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 선포는 두 가지 법 모두에 기반한 것으로 알려졌다. 효과적인 대처로 하루빨리 코로나19 난세와 아울러 국가비상사태가 종식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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