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칼럼] 외로움
2020-04-09 (목)
강순구 목사 (산호세 성령의 비전교회 담임)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면 누군가를 의지하고 싶어진다. 선배나 친구나 가까운 가족 등 우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고 여의치 않으면 교회도 찾고 카운셀러도 찾는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가까운 사람이 자꾸 멀어지게 되고 누구와 만나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처음에 미국에 왔을 때 가장 힘든 것이 외로움이었다. 1982년 유학생으로 첫 발을 내딛은 곳이 켄터키 주 소도시에 있는 주립대학이었는데 한국 사람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그때 만난 미국인들은 너무도 친절하였고 나의 처지를 이해해 주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었다. 추수 감사절에 한 미국 가정에 초대를 받았다. 다른 학생들은 다 고향 집에 돌아가고 학교 기숙사엔 몇 몇의 유학생들만 덩그마니 남았는데 몇 대의 차가 오더니 한 사람씩 타라는 것이었다. 추수 감사절 기간동안 갈 곳이 없는 학생들을 집으로 초대해 며칠동안 머물게 해주는 고마운 배려였다. 그들과 지내며 따뜻한 가정의 분위기를 한껏 느꼈는데 그때도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외로움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캘리포니아에서 한 교포 목사님 딸과 만나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가정을 이루어 캘리포니아에서 35년을 살게 되었다. 이 곳에 살며 외로움은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마음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이 고독감은 어찌할 수 없었다. 5년만에 한국을 방문해 가족과 친지들, 친구들을 만났다. 너무 반갑고 재미있어 그 후로 자주 한국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 한국 땅도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부터 고향이라는 생각보다는 낯선 도시에 혼자 와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외로움은 떨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인가? 나는 목회를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상담하게 되었다. 대개의 외로움은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립하지 못한 상태, 자기만의 시간과 보람을 갖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에 관한 책을 보면 일을 열심히 해라. 신앙을 가져라. 카운셀러를 만나서 상담을 해라. 반려견을 키워라. 긍적적인 마음을 갖고 적극적으로 주변에 있는 사람과 어울려라. 운동을 하라. 여행을 하라. 가급적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을 피하라. 돈을 모으라. 동호회를 만들라. 자신을 사랑하라 등등 여러가지 좋은 말이 많지만 결국은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가 가장 중요한 Key가 되는 것이다. 자신이 세운 목표를 이루고 그것에 만족하고, 남을 의지하지 않고 자립한 분들에게는 외로움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으면 삶의 보람과 기쁨을 얻게 된다. 누군가가 강한 삶의 동기를 부여하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외로움은 사라지게 된다. 문제는 나이가 들 수록 그런 강한 동기를 부여하는 기회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젊어서 중년까지도 삶의 애착을 가지고 목표를 이루며 열심히 살았던 분들도 노년에 가서는 외로움을 타는 분을 보았다. 건강이 나빠지면 더욱 그러한 경향이 있었다.
그러면 어찌할 것인가? 우리의 일생 자체를 이해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젊어서는 힘써 배우고 중년에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고 노년에는 자족하며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안다면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거기에 더해서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갖게 되면 외로움은 훨훨 날아가 버리고 말 것이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가 되었다고 말한다. 창조주 하나님이 나의 절친이라면 무슨 외로움이 있겠는가? 나는 목사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노년에 꼭 깊은 신앙을 갖기를 권면한다. 친구도 가족도 이웃도 다 떠난다. 가장 가까운 부모나 자식도 떠나며 죽음이 가까워 올 때에는 이세상에 혼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 하나님이 친구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100세 시대에 진정한 인생의 승자는 마무리를 잘하는 자이다. 성공도 인정받는 것도 부한 것도 모두가 지나가고 이제는 홀로 하나님을 뵙는 것이다. 노년에 하나님과 동행하고 또 천국 간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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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구 목사 (산호세 성령의 비전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