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희망의 봄

2020-03-25 (수) 김명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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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문예

내가 잘 가는 공원 호숫가에 노란 수선화 꽃이 피었다. 수선화 곁에는 개나리도 노란 입술을 뾰족이 내밀며 환하게 웃고 있는 게 보기 좋았다. “아, 봄이구나.” 환희심이 솟아 저절로 감탄사가 튀어 나왔다. 아직 꽃샘바람이 차갑긴 하지만 노랗게 피어 오른 수선화 꽃과 개나리꽃을 보고 있자니 봄이 희망처럼 찾아 왔음이 실감되었다.

봄은 자연의 순환 법칙에 따라 어김없이 찾아 왔는데, 코로나 19 공포로 일상이 불안해서일까. 예쁜 봄꽃들을 바라보면서도 마음은 햇살에 닿은 듯 밝아 졌다가 어두운 그림자로 덮이곤 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했던가. ‘봄이 와도 봄이 아니다’는 뜻을 가진 고사 성어가 생각나는 것은, 봄 같지 않은 봄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의사는 “손을 자주 씻고, 손으로 얼굴을 만지지 말고, 사람이 많은 곳에는 가지 말고, 여행도 자제해야 한다.”는 주의를 주었다. 그 말들을 마음에 새기었으나 봄이 왔어도 겨울 외투를 쉽게 벗지 못할 것 같은 무거움에 짓눌렸다. 병이란 의미가 주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인간은 병이 아니어도 언제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는 존재다. 누구나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될지 모르는 유한한 생명체. 그 생명을 담보로 살아가야 하는 지구인. 그 변할 수 없는 근원적 한계가 때로는 인간을 여유 있게, 조급하게, 관대하게, 선하게, 악하게도 하는 게 아닐까. 요즈음의 나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죽음을 뛰어 넘는 자유인으로 어떻게 거듭날 수 있을까 하는 사색에 잠겨 보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 가능의 것을 생각하면서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 남편과 살아 온 사십 여년의 생애를 돌아보는 일. 기억 속에 잠겨있는 일들을 짧게나마 글로 써보는 것. 내 아들과 딸이 아빠, 엄마와 보냈던 추억들을 더듬으며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세상에 단 한 권의 책을 묶어 보는 일. 나는 그 책에 실을 글들과 사진들을 간추려 보면서, 나에게도 참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음을 되새겨 본다 .어렵고 고통스러웠던 일들도 잘 견뎌냈다는 것으로, 즐겁고 행복해 진다.

무서운 코로나 19라 해도 이런 나를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노란 수선화 꽃과 개나리꽃의 환한 미소가 가슴에 안겨 오는 봄날, 곧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희망에 젖어보기도 한다. 코로나 19가 세상을 휩쓸면서 인간에게 주고 갈 뜻밖의 선물은 무엇일까. 인간은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지혜롭게 버텨온 역사가 있었다.

<김명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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