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유와 사랑이 일치하려면

2020-03-25 (수) 테드 리/ 뉴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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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문예

가수 김추자의 노래 ‘거짓말이야’가 사회 불신 조장을 이유로 금지곡 처분을 받았던 때가 있었다.

몇 년 전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간통죄가 위헌이라는 7대2의 결정을 내렸다. “혼인과 가정의 유지는 자유로운 의지와 애정에 맡겨야지 타율적으로 강제할 수 없다”는 다수의 의견에 반해 간통죄목의 위헌판결은 “혼인과 가족 공동체의 해체를 촉진시킬 수 있으며 가정 내 약자와 자녀의 인권과 복리 침해가 우려된다”는 것이 소수의 의견이었다.

그동안 세계에서 간통죄가 남은 나라가 이슬람 국가 말고는 한국뿐이었었는데 한국인만이 그때까지 ‘성적 자기 결정권’을 무시당한 채 법의 통제를 받아왔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또 한 편으로는 전 세계에서 1억 권 이상 팔린 원작을 4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Fifty Shades of Grey)’는 2억6,000만달러를 거둬들였고 한국에서도 현실도피냐, 가정폭력을 부추기는 여성비하냐의 논란을 불러 일으켰었다.


자, 이쯤해서 진지하게 생각 좀 해보자. 사랑이 내용이고 결혼은 그 하나의 형식에 불과하다면 모든 사상과 이념 그리고 모든 사회나 국가제도 또한 그렇다고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하자면 사랑이나 사상이 새와 같은 것이라면 어떤 형식이나 제도도 새장과 같다고 해야 하리라.

일부일처이든 다부일처이든 일부다처이든 또는 다부다처이든 결혼제도의 유래가 일종의 소유제도에서 비롯한 것 아니었던가.

어디 그뿐인가. 공산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개인주의, 전체주의 등 뭐라고 명명하고 일컫든간에 그 이상과 현실은 천양지차 아니던가. 예수와 석가모니, 그 밖의 모든 성인 현자들이 다 공산주의자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었나. 민심이 천심이어야 할 민주주의 국가와 사회에서도 있는 자가 ‘갑’이요 없는 자가 ‘을’이 되는 현실이다. 이는 민주주의라는 허울 좋은 이름의 옷만 입었을 뿐, 지배라는 구조와 제도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어느 사회 어느 국가에서든 사회구성원과 국민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너 나 할 것 없이 하나같이 다 불완전한데 어떻게 우리 국가와 사회제도만 완벽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러니 언제 어디서나 우리 각자가 남이 아닌 나부터,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끝없이 내 사랑과 내 정신부터 지극정성으로 가꾸고 키워 볼 일이어라. 이럴 때 비로서 이상과 현실이, 자유와 사랑이,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 지상낙원이 도래하리라.

<테드 리/ 뉴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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