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녹두전과 김치

2020-03-04 (수) 박옥희/ 뉴욕 뉴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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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전을 하려고 반으로 깐 녹두를 물에 담가놓고 준비물을 해나간다. 돼지고기가 있어야 한다. 전에 구운 조각이 있어서 이도 부실한 우리에게는 잘게 썰면 되겠구나 했다. 그리고 김치가 있어야 하는데 40여년동안 김장을 꼭 했는데 2019년에는 여차 여차 해서 못했다.

김치가 없으면 녹두전을 못한다. 아참, 냉장고 저 구석에 고이 모셔놓은 묵은지가 조금 있다. 다행이다. 김치를 송송 썰고 국물도 약간 떨떠름하지만, 김치는 김치국물이다. 감사했다. 녹두껍질으 수없이 씻어서 껍질을 내보내야 조금씩 노란 살이 많아져 간다. 자꾸 씻어서 껍질을 없애버리고, 없애버리고...

얼마나 오래 했는지 부실한 어깨가 아프다. 그렇다고 완전히 껍질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고 이만하면 꽤 노르스름한 살이 많다 할 때까지 껍질을 걸러내고 믹서기로 갈아서 김치국물로 간하여 색깔도 좀 나게 해놓았다.


찹쌀가루 두수저도 넣어서 잘 어울리게 내놓았다. 팬에서 전을 부쳐간다. 입에서 침이 나와서 우선 귀퉁이 익은 것을 호호 불면서 먹었다. 엄마 맛은 아니지만 꽤 비슷해졌다. 녹두전은 더울 때도 맛있고 식었을 때 조금씩 씹어 먹으면 그 야릇한 고소함이 정말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게 맛있다.

김치, 돼지고기 조금, 녹두가 궁합이 맞아서 소박하고 맛있다. 묵은지 조금을 고이 냉장고 구석에 남겨놔서 다행이지 없었으면 못몫한다. 김치의 위대성을, 조상들의 미각의 높은 예술성으로 감탄하면서 잘 먹었다.

잘 기억이 안나는데 올해 뉴욕에서인지 세계에서 가장 맛의 우두머리를 김치가 차지했다고 하니 그럴만한 참 잘된 일이다, 동감하고 감사한다.

사랑하는 엄마, 다소곳이 엄마 팀에서 음식을 배우지 못하고 늘 벌벌거리고 돌아다니기만 해서 엄마 것을 다 배우지 못한 것이 늘 후회스러웠는데 어깨너머로 보고 들은 대로 했는데도 꽤 괜찮다.

그 당시 엄마는 손수 공해없는 배추, 무 양념으로 지극 정성 담으신 그 김치로, 또 맷돌에 갈아서 만드신 녹두전이야, 정말 최고의 맛이었습니다. “ 고맙습니다, 어머니!“

<박옥희/ 뉴욕 뉴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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