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한권, 술 한 병, 빵 한 덩어리에 그대가 내 옆에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것 없다는 지상낙원을 노래한 서력 12세기 페르시아의 시인 오마 카얌은 근본, 궁극적 신비 속에 싸인 수수께끼를 풀 길 없는 우리의 절망감을 술로 달래자고 이렇게 읊었다.
“어제 이날 이때의 광중(狂症)이 생겼어라/ 내일의 침묵 또는 승리의 개가(凱歌)나 절망의 비가도/ 자, 마시자.
어디서 우리가 왔으며 왜 왔는지 모르나니/ 어서 마시자 /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 지/ 알 수 없나니.”
그 한 예로 영국 시인 딜란 토마스(Dylan Thomas1914-1953)를 들 수 있으리라. 특히 죽음과 종교와 섹스 그리고 사랑의 여러 가지 무드와 스타일로 무아의 황홀경에서 부르짖는, 고음으로 오르기도 하고 비통 침울한 저음으로 침잠하기도 하는, 언어의 발음과 발성에 매료되고 집착했던 그는 미국 순회강연 도중 39세로 그의 삶을 일찍 마감했다.
당시 검시관의 진단서에 기재된 사망 이유는 그가 하룻밤에 스트레이트로 위스키를 연거푸 열여덟 잔이나 마신 ‘두뇌에 대한 모욕’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살아서 쓴 시 ‘그리고 죽음이 지배하지 못하리라(And death shall have no dominion)’에서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미칠지라도 그들의 정신은 말짱할 것이오, 바다에 빠져도 그들은 다시 떠오를 것이오; 연인들은 없어져도 사랑은 남을 것이오”
그의 산문과 희곡을 통해 유감없을 정도로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탕진한 시인으로서 게걸스런 그의 영혼은 성령에 취했던 안 했던 간에 성신(聖神)의 거룩한 제단에 펼쳐지는 시심(詩心)의 향연에 참석하게 되어 흔희작약(欣喜雀躍) 하였으리라. 영국 런던 템즈 강가에 자리한 웨스트민스터 성당 ‘시인의 코너’에 한 자리를 차지, 그의 기념비가 1982년 그것도 그에 못지않게 방종 방탕했던 바이런 경의 기념비 옆에 건립되었다.
이렇게 이슬 먹고 구름똥 싸며 바람처럼 살다 간 ‘자유인(free spirit)’들은 그렇다 치고, 우리 평범한 속물들은 어쩌랴. 삶의 다른 한 쪽 죽음을 의식하고 사는 것 이상의 종교도, 죽음을 안고 사는 삶을 더할 수 없이 잘 살아보는 것 이상의 예술도, 사랑으로 숨쉬고 사는 사랑 이상의 삶도 없으련만…
정녕 그 어느 누구와 만났다 헤어지는 것이 그 어느 누구의 뜻과 섭리에서인지 알 길 없지만, 사랑의 사자(使者) 큐핏의 수많은 화살을 운 좋거나 아니면 나쁘게도 용케 맞지 않는 사람들은 어쩌며, 운수 대통인지 아니면 운수가 사나워 이 ‘사랑의 화살’을 한 가슴에 너무 많이 맞고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의 깊은 상처는 그 누가 다스려 아물게 해줄 수 있을까. 이 사랑의 독침을 맞은 모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실연의 가시덤불 속에서 남몰래 소리 없이 몸부림 치면서 온 몸으로 피눈물 흘리고 있으리라. 붉은 피가 창백해지도록.
이 쓰도록 맵도록 새콤달콤한 사랑의 미약(媚藥)을 맛보고 사랑의 마술에 한번 걸리면 이 마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랑만을 위해서 살든지 죽든지 하라’는 사랑의 절대적인 지상명령을 거역할 수 없게 되나 보다.
인생무대에서 제 노릇 한번 제대로 못 해보고 언제나 그 어느 누구의 대리 노릇이나 하는 꼭두각시 인생의 비애가 아닐까. 여기서 우리 칼릴 지브란의 경구(警句) 하나 들어보자.
“눈처럼 흰 종이 한 장이 말했다/ 순결하게 나는 창조되었으니 영원무궁토록 나는 순결하게 살리라/ 내 몸에 더러운 것이 가까이 오거나 검은 것이 내 몸에 닿는 것을 참고 견디느니/ 차라리 나는 불에 타서 하얀 잿가루가 되리라.
잉크병이 이 말을 듣고 그 시꺼먼 속으로 웃었다. 그리고 그는 종이에게 접근조차 안 했다. 눈처럼 흰 종이는 순결하고 정숙하게 영원토록 있었다. 순결하고 정숙하게. 그러나 외롭고 공허하게.( Kahlil Gibran, 1883-1931) ”
옳거니, 고통을 당할 바에는 사랑 때문에 넘치는 사랑 때문에 받는 고통 이상 또 뭣이 있으랴. 사랑이 가능만 하다면 사랑이 절로 샘솟기만 한다면 어떤 수난이나 고통도 감미롭기 때문이지.
이 세상 그 어느 누구에게도 너무 많이 줄 수 없는 것이 세상에 사랑 말고 또 있으랴. 아무리 주고 또 줘도 그 더욱 주고 싶고, 아무리 받고 또 받아도 그 더욱 받고 싶고, 결코 주는데 지치지 않고 받는데 싫증나지 않는 것이 세상에 사랑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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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리 / 맨하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