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번호 매기는 사회

2020-02-07 (금) 김창만/ 목사·AG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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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허의 대명사였던 다윗의 변질은 그가 통일 이스라엘의 군주로 등극한 후 실시한 인구조사 때 나타났다. 하나님이 금한 인구조사(서열화 작업)로 인해 다윗의 겸손은 여리고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다윗의 위대함은 번호 매기는 관료적 욕망 때문에 순간에 와해되었다.

앤디 그로브(Andy Grove)는 인텔의 전설적인 CEO다. 그는 모든 평직원과 함께 칸막이를 한 좁은 공간을 집무실로 쓰며, 회사 주차장에 CEO 자리를 따로 지정해 두지 않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인텔의 지정석 없는 주차정책은 번호 매기는 사회(numbering society)에 대한 반기를 든 것이나 다름없다.

로버트 풀러의 ‘Somebodies and Nobodies' 중에서


서울 강서구 주민들이 특수학교(장애자를 위한 공립학교) 설립을 반대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그 지역에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집값 서열이 하락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학군 서열이 나빠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이 되는 국립 한방의료원 유치는 대 환영이지만 특수학교 설립은 결사반대라는 것이다.

새 다리 건축 감독을 맡은 시 감독관이 다리를 왕래하는 주민의 숫자를 파악할 청년 조수를 소개받았다. 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돌아 온 청년인데 말수가 적고 성실해서 마음에 들었다. 감독관과 청년은 매일 다리 양쪽 끝에 서서 통행하는 사람의 숫자를 적었다.

하루 통계를 비교해 보면 꼭 한 사람씩 차이가 났다. 변함없는 ‘한 사람의 차이’가 궁금했던 감독관이 마지막 날 청년에게 물었다. ‘왜 매일 꼭 사람씩 차이가 나는가’ 청년 조수는 얼굴이 상기된 채 대답했다. “아침마다 저와 교제하는 여성이 다리를 건너 직장에 갑니다. 이 여성은 제가 가슴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결코 군중의 숫자 안에 포함시킬 수 없었습니다.”

마틴 부버는 말했다. “인간에겐 두 종류의 관계가 있다. ‘나-너’의 관계와 ‘나-그것’의 관계다. ‘나-너의 관계는 인격과 사랑의 관계이고, ’나-그것‘의 관계는 거래와 이익추구의 관계이다. 인간관계의 비극은 ’나-너‘의 관계를 잃는 것에서 비롯된다.” 신약성경은 말한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김창만/ 목사·AG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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