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녀 시절, 내 친구 정숙이는 묵향이 가득 담긴 그녀의 좁은 방에서 붓글씨를 자주 썼다. 먹물을 듬뿍 찍은 붓으로 하얀 한지에 윤동주의 시 구절을 굵게 써 내려가면 나는 너무 숙연해져서 자세를 고쳐 앉곤 했다.
세월이 흐른 요즈음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면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 하늘을 올려다 보기가 두렵다.
거울을 맑게 닦아 볼수록 더 선명하게 비취는 거울 속에 내 모습이 민망하다. 어쩌면 이 나이가 되도록 내 마음 모습 하나 다스리지 못하고 살아왔을까? 오랜 세월 배인 속진과 근심으로 얼룩져 있는 내 모습이 보기 싫어 집을 나선다.
내 신발은 하루도 빠짐없이 이 육중한 몸을 싣고 내가 가자는 대로 어디든 간다. 아주 작은 몸집으로 덩치 큰 나를 싣고 다니다가 그 무게에 못 이겨 자신의 살점이 찢겨나가고 헐었다. 그런데도 아무 말이 없습니다.
나는 만신창이가 된 내 신발에게 ‘네가 참 고생이 많았구나’, ‘이렇게 상처가 나도록 얼마나 아팠느냐?’, ‘미안하다.’ 그런 말은 한 번도 해 주지 않았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나는 내 친구를 내 이웃을 헌신짝 버리듯이 내친 사람은 없었을까?
나 또한 내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가 나를 고운 모습으로 성숙시키지 못하고 일그러진 얼굴로 변하게 하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오늘 신발이 된 느낌이었다. 감당하지 못할 내 작은 어깨에 윤동주문학회 회장이라는 직함이 덜컥 얹혀졌다. 너무 무거운데 내려놓을 수도 없습니다.
인맥도, 학맥도, 문맥도 내세울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더욱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지 못해 괴롭다. 일본 후쿠오카 감옥에서 옥사하고 하늘에 별이 된 윤동주 시인에게 욕이 될까 두렵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확고한 신념과 결연한 윤동주 시인의 의지가 제 가슴 깊은 곳으로 전해진다.
이것이 오늘 나에게 주어진 뿌리칠 수 없는 길이라면 나도 ‘새로운 길’을 걸어가야겠죠.
고결하고 수줍음 많았던 한 청년이 1945년 2월 16일 일본 식민지로부터 해방 6개월을 남겨놓고 겨우 27세의 나이로 죽어서 꽃을 피우고 세계의 별이 되었다. 나는 그런 숭고한 정신으로 큰 일을 할 수 있는 인물은 못 된다.
그러나 내 작은 신발이 무게를 지탱하면서 묵묵히 소명을 다 했듯이 흔들리는 갈대도 뿌리가 깊다는 믿음으로 담담히 소임을 다 해 보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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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옥식 / 윤동주 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