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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음식관 다시 듣고 사찰음식 세계화 새로 보다

2020-02-06 (목)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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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으뜸 마하가섭(Mahakassapa/가섭 존자)는 흔히 두타행(頭陀行)의 표본으로 꼽힌다. 두타는 산스크리트어 Dhuta를 음역한 것으로 버린다 떨쳐낸다 씻어낸다 닦는다 등 의미를 갖는다. 수행자라면 마땅히 세속적 욕심을 모두 내려놓고 심신을 깨끗하게 하는 고행을 기꺼이 한다는 뜻이다.

세속적 욕심에 식욕 내지 식탐이 빠질 리 없다. 그만큼 질긴 탐욕인 때문이다. 약 2,600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 시절에 수행자의 이른바 열두 가지 12가지 두타행에서 바른 식음에 관한 것이 다섯 가지나 된다. 신도나 국왕 등의 공양을 받지 않고 언제나 걸식한다(常行乞食), 빈부를 따지지 않고 일곱 집을 차례로 찾아가 걸식하되 그래도 밥을 얻지 못하면 그날은 굶는다(次第乞食), 하루에 한 차례만 먹는다(受一食法), 발우에 든 음식만 배고프지 않을 정도만 먹는다(節量食). 정오 지나면 과일즙 같은 것도 마시지 않는다(中後不得飮漿).

시기와 범위를 두고 이설이 있긴 하지만 육식 또한 금지됐다. 대반열반경 사법품(大般涅槃經 四法品)에 보면 마하가섭이 건의 내지 질문하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육식을 금지하는 내용이 매우 세세하고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주로 대화체로 구성된 초기경전들 중 여러 대목이 그렇듯이, 이 대목도 과연 제자와 부처님의 대화인가 싶을 만큼 이것저것 따지듯이 묻고 조근조근 깨우치듯이 답하는 형식이다. 답변의 골자는 “육식하는 자는 대자(大慈)의 종자가 끊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육식을 금한 적이 없다느니 육식을 원칙적으로 금지했으나 수행자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혹은 그 고기를 먹지 않으면 죽게 생겼을 경우에는 제한적으로 허용했다느니 하는 말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무지 아니면 핑계일 터다. 걸식하는 처지에 찬밥 더운밥 육식 채식 가려먹을 수 있느냐는 말도 그럴 게다. 해당 대목을 보자.

가섭이 묻는다.

세존이시여! 온 나라가 모두 식육자들이면 모든 음식에 고기가 섞였는데 비구 등이 걸식하면서 그 가운데 어떻게 청정한 목숨을 유지하겠나이까?

세존이 답한다.

선남자야! 만약 고기가 밥에 섞였거든 응당 물속에 담가 고기를 가려낸 연후에 먹으면 계율에 어긋나지 않느니라.

가섭이 다시 묻는다.

만약 음식에서 고기를 가려내기 어려우면 어찌해야 하옵니까?


세존이 다시 답한다.

선남자야! 모든 음식에 고기가 있을 때는 물에 담가서 고기를 건져내고 국물도 걸러 내어 본래의 맛이 가셔지면 먹어도 된다. 만약 어육을 가려낼 수 있는데 그냥 먹으면 죄가 되느니라. 내가 오늘 인연있는 자에게 식육을 금제하기를 설하고 인연없는 자에게도 대반열반경을 설하여 마땅히 식육을 금제하도록 하나니 이것을 능수문답(能隨問答)이라 하느니라.

자비의 종자를 끊는다 하여 육식을 금하고 정신을 들뜨게 하고 음심을 일으킨다 하여 오신채(마늘, 파, 부추, 달래, 아위)를 금하는 사찰음식은 부처님의 이런 음식관에 기원을 두고 있다. 오늘날 일부 사찰음식이 부처님의 본뜻과는 달리 삼시세끼 웰빙음식 내지 돈벌이 건강음식처럼 둔갑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찰음식이 건강에 이롭다는 것만 해도 좋고 나아가 그걸 계기로 부처님 가르침에 눈을 뜨는 이가 몇 명이라도 생긴다면 더더욱 좋은 거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후자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특별히 반길 뉴스가 나왔다.

르 코르동 블르(Le Cordon Bleu/파란 리본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미국의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일본의 츠지조리사전문학교와 함께 세계 3대 요리학교로 꼽히는 프랑스의 요리전문학교로 1895년 파리에서 설립됐다. 지금은 미국 영국 호주 등 약 20개국에 분교를 두고 연간 약 2만명의 졸업생을 배출한다.

르 코르동 블르의 런던캠퍼스가 한국 사찰음식을 채식전문 정규과정에 포함키로 했다는 소식이다.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장 원경 스님의 1월29일 신년회견을 전한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 학교는 올해부터 3월과 10월에 각각 3개월 과정의 한국 사찰음식 강좌를 개설한다. 이곳에서 사찰음식 특강은 두어번 있었지만 정규과정 편성은 처음이라고 한다. 한편 불교문화사업단은 오는 9월 뉴욕에서 템플스테이와 사찰음식을 홍보하는 특별행사를 열 예정이다.

<정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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