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안홍균의 로비라는 늪

2020-02-05 (수) 최연홍/ 시인
크게 작게

▶ 독자·문예

70년대 후반 코리아 게이트로 알려진 미 의회 청문회를 오늘 기억하는 분들은 많지 않겠지만 한국정치사와 한미 관계사에 한 부끄러운 장면을 정직하게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책이 나왔다. 흔히 박동선 사건으로 알려젔거나, 김형욱의 증언으로 기억되고 있는 최근세사다. 그 정치사 속에 이 책의 저자가 있다.

그는 전문위원 겸 통역으로 코리아 게이트 특별위원회에서 일했다. 76-78년 의회 회기 처음부터 끝까지 그 현장에서 일한 안홍균이 그의 회고록을 한국일보 이종국 국장이 면담으로 기록하였다. 88세의 노인이 역사를 남긴 최적의 수단이 대담 형식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좋은 팀워크의 표본이 되었다.

이 책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분이 그 역사를 적어가기 어려울 때 좋은 문필가가 나타나 사가의 역활을 담당한 것이다. 사실 그 현장에 있었던 분이 사가의 양심도 갖추었고 문필가의 재주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은 정일품의 회고록이 될수 있었다.


안홍균씨는 정치학을 공부했지만 문학적인 심성을 갖춘 분으로 유모어 감각과 재치가 뛰어나다. 그는 지금도 영화광이며 영화평론가의 안목을 지니고 있다.

내게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이 책의 끝에 나와 있다. 그 한 예로 의회특별위원회가 해체하고 문을 닫을 무렵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석별의 정을 나눌 때 나눈 농담이다.

“사실 나는 KCIA 요원으로 이 위원회에서 일했다”고 선언했을 때 미국친구들 표정이 순간 굳어져 아연하고 있었다고 회고하는 장면이 그렇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자기가 베네딕 안이라고 표현했을 때 “아니야, 당신은 미국과 한국 사이에 공정하게 일한 동료”라고 친구들이 칭찬한 대목이 그렇다. 미국 독립전쟁때 미국을 배신하고 영국군으로 넘어간 미국 장군 이름이 베네틱이었다.

마지막 위원회 파티는 젊은 미국여자 검사가 기타로 안홍균을 노래한 장면이 나온다. 놓칠수 없는 이 책의 별미다. 한국과 미국 사이에 그의 역활은 분수와 정도를 지키는 일이었다. 그 일은 쉽지 않다 . 한국에 미국의 정보를 넘긴 자가 한국의 애국자로 남는 세상이니 안홍균의 마음 가짐이 미국 안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표본이 되겠다.

이 책 안에는 이 도시에 사는 사기꾼들 이야기도 나온다. 우리들 조국에 미국에서 성공한 이민자로 알려진 사기꾼들이 한국 중앙정보부의 30만 달러를 로비자금으로 받아 자기 주머니에 넣은 인물도 나오고 할리데이 호텔 청소부장이 호텔 사장으로 둔갑해 공짜 전국구 국회의원도 되는 70년대 한국 정치의 어두운 단면이 나온다. 워싱턴 특파원들이 만들어 놓은 사기꾼들이었다. 그 다른쪽에 한국중앙정보부 요원으로 대사관에서 일하다 코리아 게이트 사건이 터지자 진실과 사실을 고해성사 하며 미국으로 망명한 분들의 처참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이 책 안에는 안홍균이라는 인품이 잘 나타나있다. 그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경기고등학교 3학년생으로 학도병으로 나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가 육군대위로 전역, 미국에 와서 학부를 마치고 조지 워싱턴에서 국제정치학 분야 대학원 과정을 마친, 그러면서도 박사학위 논문을 끝내지 않은 조금은 이상한 어른이다.

나는 안홍균이라는 인품에서 나오는 정직한 역사의 서술이라고 본다. 내 이웃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최연홍/ 시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