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감기

2020-01-16 (목) 07:58:14 이경희 / 워싱턴 문인회
크게 작게
간만에 오셨으니 족히
한 사나흘 묵었다 가시겠네
기별도 없이
낡은 몸에 방을 드리셨으니 곧
동백보다 붉고 깊은 열꽃들이
온몸에 번지겠네
낮도 아니고 아직 밤도 아닌 시각
때 이른 솜이불을 덮고 누워
이승의 인연들을 헤아려보는데
하, 슬픔만 가득 담긴 광주리라
기왕에 오셨으니
받들어 모시리라 마음먹으니
느린 강물처럼 마음이 착 가라앉는데

쉰 목소리로 물건을 팔고
쓱 소매 끝으로 콧물을 훔치며
잔돈을 건네고
처음으로 겸상이 생각나는 오늘이
귀한 손님 오신지 삼일 째 되는 날이라네

<이경희 / 워싱턴 문인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