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모로코의 해안도시

2019-12-18 (수) 송영옥 / 뉴저지 이스트 하노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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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의 해안도시

파란마을 쉐프샤우엔의 좁은 골목길은 다닥다닥 붙은 주거지도 되고 간판을 걸어놓으면 구멍가게도 된다.

10월 마지막 주 ‘카사블랑카’라는 영화로 잘 알려진 모로코의 대서양 항만 도시에 도착, 일주일 여정을 보냈다.

‘하얀집’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많은 건물이 흰색의 상업도시로 1575년 포르투갈의 식민도시로 시작 1755년 아랍인의 손으로 재건된 후 1907-57년까지 프랑스 식민통치하에서 1956년 독립하여 아랍인 모하메드 5세에 의해 kingdom of morocco 로 왕정국가가 되었다. B.C. 1,000년경 유럽, 남서아시아, 북아프리카에서 이주한 원주민 베르베르(berber) 족이 흩어져 살았으며 기원후 6 세기까지 로마, 반달, 비잔틴족의 이주가 이루어졌고 7세기에 아라비안 반도에서 내려온 아랍인에 의해 처음으로 국가형태로 자리 잡은 다른 시대에 다른 민족들로 형성된 나라다. 서북쪽의 대서양과 지중해를 접한 지역은 온화한 기온이며 척박한 사막인 적도지역까지 퍼져있는 땅으로 면적은 남한의7배에 이른다.

별 주요 산업도 없고 인력수출로 송금액이 세계 10위에 든다고 하나 개발도상국으로 진출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깊은 산속이나 사막지대에 퍼져있는 다양한 족속으로 문맹율은 높고 전근대적인 풍습이 개혁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모로코는 절대적 신성시되는 왕정과 이슬람 종교가 한데 어우러져 정치적으로는 안정된 나라라고 한다. 대서양 해변가에 위용을 자랑하는 핫산2세 회교사원은 정교한 아라베스크 문양을 손으로 일일이 새겨 넣은 세계 3번째 큰 규모로 모하메드 광장과 함께 10만 명이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다고 한다. 90%가 이슬람교이니 하루 5번 메카를 향해 절하는 일은 일상생활의 일부다.


이슬람에게 선교활동은 금지하나 타민족의 타종교에는 포용적이고 프랑스인이 세운 큰 성당이 시내에 자리 잡고 있다. 1시간 북쪽 해안으로 올라가면 이 나라의 수도인 라밧(Rabat) 에 왕의 집무실과 대사관이 모여 있는 행정도시다.

11세기 베르베르족이 세운 도시며 12 세기때 칼리프가 그 시대에 으뜸 되는 이슬람 사원과 첨탑을 세울 계획이었으나 그의 죽음으로 허사된 유네스코 유적지에 미완성 핫산탑과 넓은 대리석 광장에 수백 개의 돌기둥이 진열되어 있고 독립 모로코의 1세 왕 모하메드5세의 화려한 현대식 묘를 12세기 복장을 입은 호위병이 지키고 있다.

근처에 스페인에서 피난 온 무슬림이 정착한 우다야 성채를 둘러본 후 해안을 따라 북으로 올라가면 야외 미술관처럼 벽화를 그려 넣은 마을 아실라를 지나고 그리스 신화에서 힘의 상징인 헤라크레스 동굴에 도착하여 석양에 기울어진 햇살과 대서양의 물살이 동굴의 암석을 때리며 연보라색으로 물들인다. 헤라클레스가 요술장이들이 지키는 황금 사과를 뺏고 12 가지 시련 중 신이 되는 과정의 한 문제를 해결하였다고 한다.

이 지역이 아프리카 최서북의 도시 탕헤르(tangier) 이며 스페인과는 불과 20 mile 밖이며 유럽과의 출입구라 할 수 있다. 지중해 연안을 따라 Rif 산맥이 펼쳐있고 탕헤르에서 2 시간 동북쪽으로 가면 이 산맥 자락의 언덕마을인 쉐프샤우엔 (chefchaouen) 이라는 파란마을이 나온다. 15세기 스페인에서 종교 박해로 피난 온 유대인이 정착한 곳으로 천국의 신성함을 뜻하는 푸른색으로 집, 거리, 담을 완전히 칠하였다. 지금은 많은 유대인이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큰도시로 떠나고 유대인이 없는 마을이 되었으나 관광객이 모여들자 전통을 이어서 파란마을을 고수하고 있다.

<송영옥 / 뉴저지 이스트 하노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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