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화상
2019-10-31 (목) 07:57:38
김복동 / VA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곱게 늙어야 하는 건데
내가 요즘 걱정스러운 게 하나 생겼다
아침저녁으로 조금씩 까막까막 하거든
어떨 땐 마누라가 있거나 자식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나쁜 놈들이 다 먼저 세상을 떠나버렸어
돈도 없는 사람이 늙어버렸으니 누가 오겠어
요새는 부엌에 가는 것도 귀찮아서
밥도 한 끼에 몰아서 점심에 먹고 말거든
그래도 주전부리를 조금씩 하니까 괜찮아
나는 지금 노인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배운 게 없어서 영어도 할 줄 모르고
밑바닥에서 박박 기어왔으니 어떻게 해
나 이름이 김복동이야
날 보고 복 많이 받으라고 복동이라 지었다는데
그게 틀렸어, 안복동이가 맞는 것 같아
내가 진짜 신자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
교회에 가끔 따라 나가는데 그 때 목사님의 연설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생산한다고 하더라고
나중에 식당에서 한마디 했지
나는 왜 이렇게 찌질하게 생산했는가?
이건 하나님의 잘못이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아줌마가 날 똑바로 쏘아보면서
“아저씨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그러는데 엄청 똑똑하게 생겼더라고 눈매도 예쁘고
난 기가 팍 죽어서 아무 소리도 못했어
저녁에 생각하니까 부아가 살살 치미더라고
뭘 좀 알아야 면장 노릇도 하겠더라고
<
김복동 /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