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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등] 법 계

2019-10-31 (목) 동진 스님 / SAC 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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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월도 저문다. 거리에 이런저런 할로윈 장식들이 등장하면, 한쪽에선 축제를 생각하고, 어떤 이의 세상에선 어떤 코스튬을 할까에 대한 고민이 발발 하겠지만, 이 중의 세상에선 겨울이 온다는 싸인이다. 이처럼 같은 사실도 보는 이에 따라 그 내용은 180도로 달라진다. 사는 세상이 다르다는 증명이다. 이 중의 세상에선 할로윈을 축제로 여기는 이들은 없다. 그들이 내 세상을 알 수 없듯이, 나 또한 그들 세상을 모른다.

우리는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 그 다름에 대하여 늘 얘기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같다, 라고 여긴다. 지구가 도는 걸 전혀 느끼지 못해도, 돈다, 고 믿고, 있는지 모르면서 있다고 믿는다. 그냥 자신이 들어 안다고 여기는, 것을 저 밖에 실재한다, 믿고, 산다. 밖에 세계가 있고 우리, 는 거기 살고 있다, 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있다, 라는 게 뭔가 ? 있다, 를 설명하는 것처럼 황당한 일이 또 있을까. 다들 설명은 못해도 있다, 라고 한다. 실은 당신 눈에 보이니까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안보이는 걸 있다, 라고 할 순 없다. 바로 당신이 있다고 여기면 있는 것이다. 밖에 나무가 있건 없건, 당신이 보고 인식하지 않으면 나무는 없다. 나무, 라는 언어가 없다면 또한 나무는 없다. 모두가 저렇게 생긴 걸 나무라고 하자, 라고 합의하지 않으면 또한 나무는 없다. 그 합의를 당신이 모르면 나무는 없다. 일체는 바로 당신이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말하고 생각하는 데서 나온 것이다. 밖에 푸른빛이 어디 떠억 있는 게 아니고, 당신이 하늘은 푸르다, 인식 하면 푸른빛이 생기는 것이다. 소리가 어디 있는 게 아니라 들으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일체는 12입처’ 라고 말씀하신 부처님의 세계관이다.


일체란 세계이며 당신의 마음이다. 유무로 가릴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이해가 죽어도 안되겠지만, 즉, 당신의 ‘안이비설신의’가 닿지 않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세상은 남과 같지 않다. 그런 없는 세상을 저기 밖에 어디 정해져 있다고 여기고 살면, 당연히 괴롭지 않겠는가. 세상 닿는 것 마다 어그러져서, 수많은 오해와 상처와 고통이 발생한다. 무명이다. 그런데 이게 어디 인간계 뿐이랴. 식물계, 동물계, 태양계, 은하계...이러한 계에 대하여 하나라도 진실로 아는 게 있는가? 그런데도 세상이 있다, 고 한다. 모르는 게 뜻대로 될 리가 없다. 밖에 있다, 라는 생각에서 생멸은 나타나고 고통이 발생한다. 당신이 만든 세상 말고 다른 세상은 없다. 알 수도 없다. 이렇게 마음에서 모든 세상이 열리고 닫힘을 알아, ‘정견’, 세상의 이치를 바로 볼 수 있다면, 괴로움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부처님 말씀의 요지이다. 세상의 실상을 깨달아 알아, 대자유를 얻자는 것이다. 저기 언제쯤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한 마음 돌리면 된다는 것이다. 근데 그게 어렵다. 그 마음 먹은 대로 쉽게 돌리는 힘이 수행력이다.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와 다른 종교의 차별점이다. 만약 당면한 괴로움을 벗어날 수 있는 가르침이 아니라면, 뭐하러 부처님법을 애써 배우겠는가.

부처님은 마음 밖에 다른 건 없다, 라고, ‘심외무물’ ‘일체유심조’ ‘일체는 12입처’ ... 구구절절 말씀하셨다. 당신의 마음이 세상을 만든다. 법계다. 그 세계는 그래서 끝이 정해져 있지 않다. 언제든 밝게, 스스로 바꿀 수 있다. 얼마나 좋은가. 그 밝음의 세계에서 우리 모두 만날 수 있길 기원한다

<동진 스님 / SAC 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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