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의 빈자리

2019-10-30 (수) 소병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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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문예

어제와 다르게 맑은 햇살이 유리창을 넘나든다. 나는 누웠던 자리에 앉아 고개를 길게 빼고 창문밖을 응시했다. 현란한 빛이 잠을 깨운다. 창 밖 고목나무 가지에 앉아 요란한 소리로 울어대는 새 소리와 맑은햇살이 지난날의 어떤 추억 속에서 날줄과 씨줄로 엮어져 아련한 아쉬움으로 떠오른다

얼마전 그는 화려했던 삶의 훈장을 목에 걸고 훌~훌 떠났다. 그가 폐렴으로 병원에 있을때 나는 임파선과 구강암으로 한창 항암 치료하느라 몸이 몹시 쇠약해져 있을 때다. 하지만 의사와 식구들의 만류에도 면역이 약해져 마스크를 하고 면회를 하곤 했었다. 그는 늘 웃는다. 어느날 나는 퉁퉁 부어있는 그의 손을잡고 이렇게 뇌까렸다 “삶의 크기가 그리 크지도 길지도 않은 것을, 그렇게 허덕이며 살았나보다. 봄이면 싹이 돋고 꽃이 피는 순리의 깨달음도 맹물 마시듯 무심히 살았나보다, 아~ 세월아 ! 이제는 내 너를 기억하여 너를 잡아 보련다.” 내 말에 그는 또 웃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살면서 좋은 일도 많았지. 당신 고마워” 하며 그의 눈은 깊은 추억 속으로 빨려들고 있었고 눈가는 촉촉히 젖어갔다.

오늘도 날은 밝았다. 삶의 테두리 안에서 반복되는 생활은 어찌보면 습관 처럼 이어간다. 뒤 돌아보지 않는다. 아쉬워도 천천히 앞을 보고 걷는다. 자신의 삶을 위해서라고나 할까? 무거운 항암 박스를 목에걸고도 휘청 거리며 나는 걷는다. 많은 사람들이 힐끔 힐끔 나를 보며 지나간다. 병원에서 오는 길에 멀리 이사하는 대학 후배 내외를 만나, 글에 대한 이야기 세계 기행에 대한 이야기로 떠나는 후배와 송별을 했다. 오후 다섯시, 돌아간 남편의 의료 서비스에 대한 서류정리와 12년동안 간병해준 메디케이드 회원들을 만나 감사의 뜻을 간단히 표하고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허전했다.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윗층에 대고 “여보 나왔어” 하고 소리치면 오래 헤어졌다 만난듯이 반가워 해주었다. 오늘도 항상 열려있는 방에 머리를 들이미니 그는 나를 보고 빙긋이 웃어 주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노란모자를 쓴 남편의 사진이었다.

나는 사진을 보며 이렇게 말 했다 “나와 함께한 55년의 세월엔 당신이 내 기둥이었고 손자들에겐 영원한 사랑이었지... 여보! 고마워 ”

<소병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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