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 누군가의 몫까지

2019-10-29 (화) 07:57:43 송윤정 / 금융전문가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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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향기

며칠 전 한 글에서 ‘어공’이란 단어를 접했다. ‘어쩌다 공무원’이란다. 나는 ‘어회’라 해야겠다. ‘어쩌다 회계사’가 되었으니.
나는 어려서부터 영화를 무척 좋아해 일찍이 중학교 때부터 미학을 전공해 영화평론가가 되리라고 마음먹었다. 고3 때, 당시엔 입시시험을 치른 후 대학원서를 썼던 시기에 미학과를 지원하겠다고 하는 내게 담임선생님은 ‘너는 법이나 경제, 경영을 해야지 인문학은 안된다’고 극구반대하셨다. 고집을 꺾지 않고 미학과를 택했지만, 막상 대학에 와 적성에 안 맞아 패션 디자인에서 법, 경제학 등 이것저것 해보다가 경제, 특히 국제금융과 금융공학에 관심이 있는 나 자신을 알게 되었다.

회계사가 되리라는 생각은 없이, 단기간에 금융 공부를 하기 위한 과정으로 회계사 시험을 보았다. 대학원에서 국제금융 한 학기를 마칠 무렵 회계사 시험 합격통지를 받았다. 시험에 합격한 후 회계학과 교수님께 인사하러 갔을 때, 교수님께선 내게 “어느 회계법인에서 연수를 받을 것이냐”고 물으셨다. 대학원에서 국제금융을 마친 후 미국으로 유학 가 공부를 더 하고 월가에서 일하리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연수를 받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교수님은 일장 훈계와 회유를 시작하셨다.
“네가 시험에 붙음으로 수년간 준비한 누군가가 떨어졌을 것이다. 그 사람의 몫까지 네가 열심히 배우고 일해 이 사회에 공헌해야지! …. 회계나 세무 하면 지루하다고 생각하지만, 회계는 전 세계 공용언어고 기업이 망해도 마지막까지 일할 수 있는 자리가 회계란다. 너는 능력 있는 여성이니 분명히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될 거고, 그러면 요즘 세상엔 세계 어느 곳에 가서 살게 될지 모르는데 회계만큼 더 좋은 분야가 없단다.”
그리고는 바로 그 자리에서 교수님의 친구분인 삼일회계법인의 한 파트너에게 전화를 거셨다. “내 제자를 네게 보낼 테니 혹독하게 일을 가르치고 시키라”는 당부를 남기셨다. 그렇게 나는 회계사의 길로 들어섰다.

최근 내 모국과 모교를 만신창이로 만든 조국의 자녀들의 입시 및 장학금 특혜 논란 등을 접하며 떠오른 이가 있다. 내 둘째 오빠가 대학 1학년 여름 끝 무렵에 집에 데리고 왔던 학과 친구. 술이 몸에 받지 않아 술을 잘 못하던 오빠가 술에 떡이 된 과 친구를 끌다시피 해서 밤늦게 들어왔다. 오빠 걱정으로 잠을 못 주무시고 기다리시던 엄마가 언짢은 표정을 하자, 오빠는 친구를 방에 눕히고 나와 말했다.


“제가 언제 술친구를 집에 데리고 온 적이 있었나요? 저 친구는 정말 저 지경이 될 만한 사정이 있어 그러니 내일 아침 해장국이라도 끓여주세요. 저 친구 집이 가난한 시골인데 대학 첫 학기는 서울대 경제학과에 합격했다고 온 동네에서 잔치를 하고 십시일반 도와줘서 겨우 학비를 내고 학교에 들어오긴 했는데 학생운동 하느라 학점을 못 챙겨서 장학금을 못 받고 학비를 마련할 수가 없어 결국 2학기 등록을 못하고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었어요.”
때가 1987년이었다. 그해 1월에 서울대생 박종철이 연행되어 고문당하던 때. 양심이 깨어있는 학생은 그저 공부만 하고 있을 수 없는 시대였다.

입시나 장학금 특혜는 자식을 향한 부모의 눈먼 사랑으로 인한 작은 오류라 치부할 일이 아니다. 그들이 가로챈 그것이 그 누군가에겐 일생이 달린 일이었을 수도 있으니.
“이삭을 거둘 때 일한 일꾼들에게 넉넉히 나누어 주고 땅에 떨어진 이삭은 애써 다 거두려하지 말고 일꾼으로 일하지 못한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남겨놓아라”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한 이 말씀을 기억하며, ‘나는 그 누군가의 몫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대신 그 몫까지 책임을 다하는가’ 빨갛게 물들어가는 단풍나무를 바라보며 묻는다.

<송윤정 / 금융전문가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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