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의 탄핵제도

2019-10-23 (수)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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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원조를 빌미로 자신의 정적이자 민주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Joe Biden) 전 부통령을 궁지에 빠뜨리려 했다는 정부 내부고발자의 제보에 따라 미 하원은 공식적 탄핵소추 조사에 착수했다.

연방헌법 2조4항은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의 모든 공무원은 반역죄, 뇌물죄 등 각종 중·경범죄에 따른 소추 및 유죄 선고에 따라 탄핵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탄핵을 하려면 연방하원에서 우선 법사위원장이 수사를 거쳐 탄핵결의안(articles of impeachment)을 발의해야 한다. 하원의원 과반수가 결의안에 찬성하면 상원으로 공이 넘어가는데 상원에서는 표결로 유무죄만을 판단하여 탄핵을 최종 결정한다. 다시 말해 일반재판으로 치자면 하원은 대배심이 되어 수사 및 기소하고 상원은 소배심이 되어 심리, 재판하는 셈이다.

대통령에 대한 상원에서의 탄핵재판은 연방 대법원장이 재판장이 되어 주재하고 연방하원 의원 중 몇 명을 매니저(manager)라는 이름으로 선출하여 검사의 역할을 맡긴다. 상원의원 100명 전원은 배심원이 되어 결의안 심리 후 표결로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즉각 탄핵이 되고, 남은 임기는 부통령이 승계한다.


지금까지 240여년의 미국 건국 역사상 앤드류 존슨(Andrew Johnson)과 우리에게도 이름이 친숙한 빌 클린턴(Bill Clinton) 두 명의 대통령이 탄핵 소추되었지만 실제로 대통령 탄핵이 성공한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다.

존슨은 남부출신 민주당 정치인이었지만 공화당의 링컨이 남북전쟁을 성공리에 끝내고 압도적인 표차로 재선되었을 때 남북화합 차원에서 부통령으로 발탁한 사람이었는데 링컨이 재선 직후 40일만에 암살되는 바람에 대통령직을 승계하였다. 1868년 당시 전쟁장관(Secretary of War) 해임문제를 둘러싸고 다수파 공화당 의원들과 충돌이 잦아 결국 탄핵 소추되었으나 재판 도중 반대파 의원들과 협상을 통해 당시 상원 재적 54명중 의결정족수 3분의 2(36표)에 한 표 부족한 35대19로 기각되어 남은 임기를 수행할 수 있었다. 그는 후에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720만 달러에 매입하는 업적을 남기게 된다.

클린턴은 재정적자 해소와 미국경제를 되살린 호평으로 1996년 당당히 재선된 후 20대 초반의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Monica Lewinsky)등과의 지퍼게이트 스캔들로 소추되어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에서 고발되었으나 역시 상원에서 부결되었다. 당시 상원 공화당 의원들도 부결표를 다수 던진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표결이유를 밝히지 않고 판결문 작성도 하지 않기 때문에 왜 공화당 의원들도 부결에 동참했는지 알 방법이 없다.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된 닉슨(Nixon) 대통령은 탄핵된 것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1974년 탄핵소추 과정 중에 탄핵결의안이 가결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하원에서 가결되기 직전에 제럴드 포드(Gerald Ford) 부통령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자진사퇴했기 때문에 탄핵된 것이 아니다.

대통령에 비해 다른 고위직 중 연방판사들은 실제 다수 탄핵된 사례가 있다고 보면 미국의 탄핵제도는 엄격한 법리에 따른 사법절차라기보다 입법부가 행정부와 사법부를 견제하는 삼권분립의 한 민주장치 정도로 이해하면 타당할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재판이 진행된다면 민주당 소속 매니저들은 어떻게 트럼프 대통령을 궁지에 빠뜨릴 것이며, 상원을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들은 어떤 식으로 재판 절차를 어렵게 만들어 그것을 잘 방어해내는지 또 민주와 공화 양당이 탄핵이라는 정치적 이슈를 자기 당에 얼마나 유리하게 활용해서 내년 대선 승리를 이끌어 내는지 하는 것 등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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