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울 아기 빤스

2019-10-21 (월) 07:52:09 이정자 / 워싱턴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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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랑 빤스 하나 걸친
세 살짜리 형
막 걸음마 시작한 동생을 적군으로 정하고
신나게 전쟁놀이하고 있다
아가야
앞집 구멍가게에 가서
두부 한 모 사올 수 있을까
오른쪽 앞 백양메리야스 라벨에 칼자루 꽂고
초록색 칼 끝 땅에 닿을 듯 끌며
전리품처럼 고사리손에 받쳐 든, 두부 한모
위풍당당 돌아온 개선장군, 태어나 한
첫 심부름
첫 울음 울고부터
수만 가지 눈빛으로 신호 보내던
그 눈동자에 담겨
행복했던 순간순간들
누가 그랬지
자식은 평생 할 효도를 태어나
몇 년 안에 다 해 버린다고
울적하면 누르는 다시 보기
내 일생의 역작, 나의 다큐멘터리
울 아기 하얀 빤스

<이정자 / 워싱턴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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