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이라는 말

2019-10-15 (화) 윤석빈 / 은퇴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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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우리말 큰 사전에 보면 사랑이라는 말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중히 여기어 정성과 힘을 다하는 마음, 이성에 끌리어 몹시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그런 관계, 일정한 사물을 즐기거나 좋아하는 마음, 동정 긍휼 구원 행복의 실현을 지향하는 정념, 박애, 자비, 현대철학과 언어학에는 의미론이라는 분과가 있어 말의 의미를 과연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대하여 상세하고 치밀한 이론들을 학자들은 펴내고 있다.

예를 들어 사물의 명칭을 말하는 일반 명사에는 외연적 의미와 내연적 의미가 있다고 하며, 외연적 의미는 그 사물의 종류를 가리키고 내연적 의미는 그 사물의 속성을 가리킨다고 되어있다.

전체적이고 균형 잡힌 낱말의 의미는 자연히 내연과 외연의 의미를 다 포함해야 하겠지만 과학적인 시대정신이 지배적인 지금은 내연적 의미보다 외연적 의미가 더 우수하다고 지적되고 있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말은 어떤 구체적인 사물을 지적하는 일반명사는 아니다. 따라서 이같은 추상명사에는 내연과 외연의 의미가 별로 해당되지 않는다.

미국의 콰인(W. V. Quine) 이라는 철학자는 정의에는 보고적(Report ive) 정의와 해명적(Explicative) 정의와 창약적(Stipulative) 정의가 있다고 하였다. 보고적 정의는 위의 사전에서와 같이 언어표현의 용도에 대하여 보고와 서술을 하며 그 용어의 동의어를 나열하는데 그치고, 보고적 정의는 해당용어의 뜻을 더 잘 이해 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주석과 설명을 다는 정의라고 하였다. 대부분의 학문적 정의는 해명적 정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창약적 정의는 그 정의하려는 말의 참뜻이 과연 무엇인지 새로운 상황과 새로운 말을 만들어서 그 말의 뜻을 밝혀 들어내는 경우를 말한다. 신약성서에서는 사랑의 뜻을 이같은 정의로 자주 표현하고 있다. “천사의 말을 하며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 몸을 불살라 내어줄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이라는 내용은 사랑이라는 말의 뜻을 정의하는 특례이다.

한 심리학자는 그의 책 ‘The Meaning of Love in Human Experi ence’에서 사랑이라는 말의 뜻은 사랑의 상반개념인 증오심과의 대조에서 선명히 드러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인류역사를 돌이켜볼 때 인간에게는 사랑의 사회와 증오의 사회 두 종류의 사회가 있었다고 하였다.

인간의 체험과 감정 속에는 사랑과 증오의 요소가 함께 들어있지만 사랑의 특징은 증오심보다 사랑이 더 우세한 분위기를 이루고 증오의 사회는 사랑보다 증오심이 더 우세하게 사회의 분위기를 지배한다고 한다. 그런데 특기할만한 사실은 훌륭한 종교를 가진 사회일수록 그 사회는 사랑의 사회가 아니라 증오의 사회라는 점이라고 그는 지적하고 있다.

일찌기 사랑의 사회로 시작한 기독교는 4세기에 로마제국과 합세하면서 살인과 파괴와 그 밖의 증오의 행위를 종교의 이름으로 합법화 했었다. 현재도 종교를 일종의 국교로 삼는 나라에서는 다른 종교를 가진 나라를 악의 나라라고 규정한다.

심리학에서는 사랑과 증오심을 인간심리의 원동력이라고 간주한다. 사랑은 흔히 삶의 의욕 혹은 리비도라고 하고 증오심은 죽음의 충동 혹은 그림자라는 말로 표현했다. 증오의 사회 속에는 정신병이 증가하고 정신병의 으뜸 가는 특징은 사는 것이 도대체 즐겁지 않고 성기능에 장애를 일으키는 증세를 보이는 것이다.

사랑의 종교라는 기독교에서는 사랑은 신에게서 오고 증오심은 인간 속에 도사린 죄라고 가르친다. 사랑을 꽃피우게 하는 일이 그렇게도 어렵다면 사랑이라는 말을 우리 언어에서 지워버리는 운동을 벌이는 게 더 의미있지 않나 한다.

<윤석빈 / 은퇴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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