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서로 다르다는 것에 대한 인정

2019-10-11 (금) 케이트 송/ 코네티컷토요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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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얼마전 연세가 지긋하신 목사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평소 통화를 하는 가까운 사이는 아닌데 뜻밖의 화제를 꺼내시기에 몹시 당혹스러웠다. 그분은 나와 정치적 성향이 상반되는 쪽에서 벌이고 있는 서명 운동을 권유하고 싶어서 전화를 하신 것이다. 용건을 끝까지 경청한 뒤에 정중히 상반된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답변을 드렸는데,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씀을 이어 가길래, 정치적 견해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는데 잘못하다간 논쟁이 격해져서 싸움으로 번질 수 있으니까 통화를 그만 하면 좋겠다고 차분히 말씀드리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합리적인 대화를 더 이상 이어 갈 수 없다는 게 약간은 속상했지만 언성이 높아지지 않고 서로 비난하지 않았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요즘 우리 재외동포들이 멀리 두고온 조국도 소위 ‘조국 사태’라는 정치적 이슈로 온통 떠들썩하다. 국회 청문회는 물론이고 국감장에서 조차도 여야 의원들이 대립하며 막말이 판을 치고 흥분해서 버럭 버럭 소리를 지르는 건 이제 일상이 된 듯 싶다. 심지어 국회 법사위 국감에서 위원장이라는 분이 자신과 견해가 다른 정당 법사위원의 의견을 듣고는 “웃기고 앉아 있네” 라는 말로 응대하며 장애아들을 폄하하는 욕설까지 내뱉은 것이 생중계 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이런 말을 내뱉은 본인은 상대 진영의 국회의원의 말이 기가 막혀서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동영상을 바다 건너 살고 있는 나까지 보게 되는 현실이 너무나 착잡하다. 작년에는 이 법사위 위원장께서 방송 TV 프로그램 제작진과 통화하며 그의 판사 시절 무죄로 풀려난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에 대해 “당시 1심 판결로 한 분의 삶이 망가졌는데 책임을 느끼지 못하냐”는 질문에 “웃기고 앉아있네. 이 양반이 정말”이라고 말했다는 보도 때문에 비난의 폭주가 쏟아진 적도 있었다. 그때 어느 의원이 “당신은 웃기십니까? 우리는 피눈물이 납니다”라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었는데 피눈물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피해자를 생각하며 마음이 너무나 아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차에 같은 분이 국감장에서 분에 못이겨 욕설까지 한다는 게 한심하다 못해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다는 건 마치 사람마다 제 각기 좋아하는 색깔이 다른 것 같이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인데, 대부분은 상대방이 나의 생각이나 이념과 달라 반대의 의사를 표출하면 마치 총이라도 겨눌 듯한 심한 분노와 반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어찌보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 다시 말해 ‘서로 다르다는 것에 대한 인정’이 자유 민주주의를 맘껏 누릴 수 있는 출발점인 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서초동에서 조국 수호와 검찰 개혁을 외치며 촛불 시위를 하는 사람들과, 광화문에서 조국 퇴진과 현정부를 비난하는 사람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심해서 국론이 분열됐다고 걱정할 만도 하다. 하지만 원래 자유 민주주의는 획일화된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의견이 다양하고 시끄러 울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국론이 일치가 된다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 그러나 서로 다른 것들을 인정한다고 해서 물리적 폭력, 언어 폭력, 권력의 남용 등이 결단코 용인되서는 안될 것이다. 폭력적인 행태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자율적으로 모인 시민들의 서로 다른 생각들이 자유롭게 표현되는 광장의 민심이 살아 꿈틀 댈 수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도 결코 적지 않다. 다만 이 같은 민심이 조속히 제도권 안에서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을 통해 대의 민주주의의 법제화로 실현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태평양을 건너 온 우리 동포들도 언젠가는 고성과 욕설과 증오와 적대감이 난무하는 이 밉상스런 지금의 나라 꼴 대신 세련된 자유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조국을 멀리서라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기다려 본다.

<케이트 송/ 코네티컷토요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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