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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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2019-10-10 (목) 한재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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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정이나 부엌이 있고 부엌을 보면 많은 그릇들이 쌓여있다. 그릇들은 다양하고 음식에 따라 쓰여 지게 된다. 그릇도 목적에 따라서 크기와 모형이 달라짐을 보게 된다. 자연의 이치도 그러하다. 여러 가지 식물들이 펼쳐져서 아름다운 강산을 이루듯이 아무렇게나 펼쳐진 것 같지만 조화를 이루어 보인다. 이것들이 우리에게 유익도 주고 때론 어렵게도 한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 속에는 더 깊은 의미의 역할이 나누어지고 쓰임을 받음으로 바른 사회가 아니 국가를 이루게 된다. 그래서 각자의 사명이 그만큼 중한 것이다. 살기 좋은 사회는 각자에게 주어진 일감을 잘 감당하느냐가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게 된다. 사회가 어지럽고 국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그만큼 팍팍한 나라가 되고 후진성을 벗지 못한다. 이런 것을 우리는 지나온 우리 역사나 세계역사에서 보고 배운바 있다.

내가 잘 아는 분이 목사님인데 한국에서 여자대학교 교목으로 은퇴 때까지 사역을 하셨다. 그 목사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고 했다. “여러분은 평범한 가정에서 주부로 살기를 원하면 절대로 위대한 사람에게 시집을 가지 말라. 왜냐하면 그 사람은 한 가정에 매여서 살림이나 도와주고 아기자기한 삶을 살기에는 그릇이 크기 때문이다.” 라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가정이나 돌보고 보살피는 일은 모두의 일이지만 역할이 다르기에 그렇다.


우리말에 대장부와 졸장부라는 단어가 있다. 대장부는 큰일에 몸을 담고 대담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고 졸장부란 세심하며 가정적이고 시시콜콜 일을 간섭하고 챙기는 사람을 가르쳐 일컫기도 한다. 그릇의 다름에서 붙여지는 이름이기에 어떤 것이 옳고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능력이나 역할에 따라 붙여지는 대명사이기에 그렇다. 평범한 삶과 행복에 있어서는 졸장부라는 말을 들어도 행복하다. 자상하고 아내나 자식들에게 많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나 사회나 대의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장부의 성격 곧 그릇이 커야한다. 그래야 그림을 크게 그리고 공익을 위해서 자신이나 더 나아가 가정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아내나 자녀들은 외롭게 된다. 그릇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목의 말씀이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지도자이십니까? 그릇의 역할을 한번 헤아려 보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기의 행동반경을 설정하고 헤아릴 것을 바로 보자.

나는 미국에서 살면서 장관 자리를 아내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없다며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자기 그릇과 자신의 행복이 어디에서 오는지 찾아 나선 위대한 그릇이다. 자기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질서를 세워가는 최선의 결정이다. 나는 한국이나 미개한 국가들의 흐름을 보면서 안타까움이 앞선다. 졸장부는 대장부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기의 사고 속에 모든 것을 가둔다. 그리고서 항의한다.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자기의 자리를 모르고 서 있는 모습이다. 그런 그릇은 자기의 위치를 빨리 헤아리고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리고 자기 그릇의 역할을 잘 하므로 바른 사회를 건설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말이지 우리는 자신의 그릇을 볼 수 있는 안목부터 기르고 서야할 자리에 서야만 건설적이고 바른 나라가 세워지고 사회가 이루어 질 것이다.

부엌에서 그릇도 쓰임에 합당하게 사용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위대한 사람들이 자신의 그릇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도자가 된다면 이는 역사의 죄인이요 사회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일이다. 좀 냉철한 자기성찰이 절대 필요하고 우리는 위대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성숙함을 보여주는 위대한 자기성찰을 보고 싶다.

<한재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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