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19-10-10 (목) 08:16:57 글·사진/ 여행작가 이젬마(버지니아 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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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My Way.’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래이다. 요즘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 총 맞는다는 유머가 있다. 노래 좀 부른다 하는 남자들은 누구나 한번쯤 불러 보았을 것이고 그 만큼 많이 부르고 많이 들어서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노래야 싫증이 나거나 지겨워지면 안 듣고 부르지 않으면 그만이겠지만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 나의 길은 싫다고 안 갈 수도 없고 힘들다고 주저앉아버릴 수도 없는 것이 우리 삶의 길이다. 내가 가는 길이 햇살 가득한 꽃길이거나 혹은 원치 않는 어려운 길이라도 내 앞에 펼쳐진 길이라면 가야만 할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 해도 우리가 가야 하는 앞길은 한치 앞도 볼 수 없기에 두렵지만 때론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있기도 하다.
학창시절에 “나이 사십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땐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환경과 타고난 성격, 살아온 길의 모양과 무게에 따라 얼굴 표정이 만들어진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그것이 어떤 길이든 열심히 성실하게 행복을 위하여 삶을 사랑하며 산다면 미래의 모습은 우아하고 부드러운 빛으로 얼굴을 물들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지난 봄 데스 벨리 국립공원(Death Valley, California)과 밸리 오브 파이어 주립공원(Valley of Fire State Park, Nevada)에 다녀왔다. 그 곳에는 정말 많은 길이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쭉 뻗어 있는 길, 꼬불꼬불 되어있는 길, 커다란 바위를 뻥 뚫어 만들 길 등등. 셀 수도 없이 많고 다양한 모양의 길들을 보면서 오래 전 그 옛날에 이런 길들이 생기기 전에는 이 곳에서 자칫 잘못하여 길을 잃으면 사막에서 방황하다가 죽은 사람들이 정말 많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 곳을 왜 죽음의 계곡이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지난번 여행에서 수많은 길들을 찍으면서 인간이 얼마나 대단하고 위대한 존재인가 새삼 느꼈다. 자칫 잘못하다가 길을 잃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죽음의 계곡에 이토록 아름다운 길들을 만들어 놓지 않았는가. 우리 삶의 길에서도 죽고 싶을 만큼 힘든 길을 만났을 때 좌절하지 않고 지혜롭고 성실하게 삶을 잘 헤쳐 나가다 보면 이렇게 멋진 길들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겠는가.


길

위의 사진들은 ‘Racetrack Death Valley N.P. California’에서 찍어 온 것들이다. 물론 글 속에 표현되는 차가 다니는 길은 아니지만 ‘경마장 계곡’이라 불리는 이곳은 휴대전화가 안되는 것은 물론이요, 크고 작은 돌로 되어있는 비포장 길이라서 4륜구동 차로만 갈 수 있는 곳이다. 덜컹덜컹 흔들리며 좁은 돌길을 따라 두어 시간 운전을 하다보면 ‘Playa’ 라고 불리는 마른 호수를 만난다. 이 호수는 평평하고 쩍쩍 갈라진 건조한 표면 위로 수많은 암석들이 굴러 떨어져 내려오면서 만든 자국들이 마치 길처럼 보인다. 특이한 풍경이기에 그 만큼 사진가들에게 사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길

우리내 인생에 햇살 가득한 꽃길만 있겠는가. 때론 위 사진처럼 쩍쩍 갈라지고 메마른 길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앞에 주어진 삶을 사랑하며 성실하게 열심히 살다보면 분명 햇살 가득한 꽃길에 앉아 우아하게 웃으며 쉬는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글·사진/ 여행작가 이젬마(버지니아 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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