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심리학을 주도해온 독일 사람들의 어휘에 샤든프로이드(schadenfreude)라는 말이 있다. 원래 ‘schaden’은 영어의 고통(harm), 손실(loss)에 해당하고, ‘freude’는 기쁨(joy) 정도가 되므로 해악적 기쁨(malicious joy)이라고나 할까. 그러니까 타인의 불행에서 기인되어 자신의 쾌감으로 전이된, 아주 해괴하고 고약하나 그 역시 사람의 본성이어서 이제는 보편성까지 획득하였기에 곧 잘 인용되는 심리학적 용어(delight in another’s misfortune)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우리말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심리와 맥을 같이 하나, 그 단순한 질투를 넘어 타인의 고통을 바라볼 때 거기서 오는 한줄기 안도와 까닭 없이 느껴지는 느긋한 위로 등 가학적 심리가 우리들의 몸에 내재되어 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우리가 존재하게 된 이유라는 뜻이다. 심하게는 ‘고소한 쌤통이나 당해 싸다’를 뛰어넘는 어떤 짜릿한 악마적 쾌감을 동반한 것이어서, 타인을 적극적으로 궁지에 몰아넣어 떨어뜨리는 음모와 모략, 그 정치적 상황이 왕왕 윤리적인 후대로부터 받는 비판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모두가 우리가 무리를 지어 집단생활을 하게 되면서 생겨난 매우 복합적이고 섬세한 감정과 심리일 것이다. 인류는 다른 포식자보다 뜀박질과 나무타기, 사냥에도 뛰어나지 못했지만 특유의 연대와 무리지음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마지막 빙하기에서 살아남았고, 지금 간빙기를 겪으며 최상의 포식자가 되어 달나라와 우주는 물론 인류사의 전례가 없이 가장 성공적인 진화를 하는 종이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또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기위해서는 동굴에서 경쟁과 협력을 통해 살아온 이래, 끊임없이 타인이 나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늘 해석하며 살았을 것이다. 결국 그것이 예의와 범절을 낳았으며, 우리는 대부분 그 테두리 안에서 무리를 지어 살아가게 하는 사회적 본능을 갖게 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타인의 불행이 곧 나의 잠재적 이득이 된다는 것을 어느새 몸으로 체득하였을 것이고, 그것이 원시사회를 거치면서 덜 정제된 사회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되었으며, 드디어는 누구나 드러내 놓고 말할 수 있으리 만큼 일반화 되었다.
윤리적 측면에서 보면 우리 모두가 그렇게 저열한 방법을 구사하지 아니하면 한 몫을 못하는 그런 못난이들의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수많은 사례들은 어디서고 언제나 차고도 넘친다.
즈음의 고국에서 태풍과 추석과 함께 몰아친 일련의 ‘조국대란’이니 뭐 그런 정치 쟁점들도 해괴하지만 일종의 샤든프로이드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그 씨알도 아니 먹히는 공연한 일로 참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남의 집 빨래통을 뒤집어 쓴 느낌이었다면 지나친 과장일런지…. 함께 연상되는 어느 이야기 첫 구절이 있다. “행복한 집은 대부분 같은 이유로 행복하고, 불행한 집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와 곡절로 불행하다”는 안나 카레리나의 첫 구절이 그것이다. 아마도 행복을 ‘성숙’으로 치환하면 딱 맞아 떨어지는 구절이고 연상이 될 듯하다.
물론 나만의 동떨어진 연상이겠으나, 꼭 내 지레짐작이 틀렸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이유인즉 사람의 감정엔 샤든프로이드 같이 잔인한 면도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또 불교의 산스크리트어에서 연유된, 타인의 행복에 공감어린 기쁨도 있다. 즉, 무디타(mudita) 같은 경지도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마치 자라나는 어린세대의 안위와 안녕을 목도할 때 윗세대가 갖게 마련인 매우 우호적이고도 애틋한 시선, 다시 말해 동질적 자기체화로 연결되어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하게 솟아나는 애정이 바로 그것이다.
어쩌면 인간과 세계는 일사분란하게 어느 한 바퀴로만 굴러가는 것이 아니며, 그 바퀴의 축은 샤든프로이드와 무디타를 타고 굴러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또 더 나아가 다른 축은 어느 초월의 의지와 그의 섭리를 타고 이미 둥근 삼각형과 동시에 평면곡선을 함께 하는 정방형 평행사변형일 수도 있다는 애매한 언어적 유희와 모호한 짐작만 있는 그런 영역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속에서 그것마저도 우린 보호와 멸균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며 수많은 균들의 견제와 더불어 우리마저도 독을 뿜고 살아가고 있는 엄연한 생태계로 봐야 마땅할 것이다. 따라서 세상은 자랑과 보람도 또한 긍지도 있고 또 다른 축에는 영욕과 패배와 수치도 분명히 있는 만큼 게다가 거기에 걸맞는, 참으로 해괴한 샤든프로이드로 반짝이는 아주 외로운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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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혜 / 부동산인,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