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 인생의 가을

2019-10-09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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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절로 흐르던 한여름의 무더위. 그런 계절이 어느덧 물러가고 벌써 10월에 들어서니 아침저녁의 기온이 내려가면서 본격적인 가을정취를 느끼게 한다. 이때가 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시 한편이 생각난다. 윤동주 시인의 시라고도 하고 김준엽씨의 시, 혹은 작자미상으로도 알려진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 이라는 시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 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지금 나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노라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살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기쁘게 대답할 수 있도록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꾸어 가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나고 물을 것입니다./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좋은 말과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 하겠습니다.

노년층의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그동안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곧 형형색색으로 물들게 될 단풍을 바라보면서 올해는 내 인생의 가을이 어떤 색깔로 채색될까, 또 앞으로 남은 생의 기간은 무슨 색으로 채색해야 할까 깊은 상념에 빠지곤 한다. 또 자신이 걸어온 인생에서 무엇이 잘못됐으며 후회스러울까 되돌아보게도 된다. 도전했으나 실패했던 것? 시도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것? 그런 것들은 아닐 것이다.


대체로 인생 막바지에 오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원했지만 한 번도 시도해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 후회한다. 아무 것도 시도해 보지 않고 “언젠가 또 해볼 기회가 있을 거야.” “언젠가는 내 모습도 달라질 날이 있을 거다.” 하면서 이대로 끝나지는 않을 거라는 식으로 살다간 결국 마지막에는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 문구처럼 ‘우물쭈물 가다간 내 이럴 줄 알았지’ 하는 말 그대로 더욱 후회하는 날이 올 것이다.

농장의 평범했던 주부가 78세 부터 그림을 시작, ‘미국의 국민화가’라는 명성까지 얻은 그렌마 모제스 할머니. 101세에 숨진 그녀는 남편이 죽고 10명의 자녀중 5명이 죽자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72세 나이에 자수를 시작했다. 그러나 손이 아파 더 못하게 되자 붓으로 농장풍경을 그리기 시작, 어느 날 수집가가 한 시골마을 가게에 걸린 그녀의 그림을 사가지고 간 것을 어느 기획가가 미술관에 전시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미국인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한인사회 많은 노인기관, 봉사단체 등에 가면 한인 노인들이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노래나 악기, 그림, 서예 등의 취미활동이나 컴퓨터, 사진, 영어, 요가, 댄싱 등 특별활동을 하며 자신의 마지막 생을 아름답게 가꾸고 보살피는 노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들의 몸은 비록 늙었지만 생각은 아름다운 청춘으로 활력이 넘쳐난다. 이들은 스피노자의 말대로 ‘내일 설사 마지막이 오더라도 오늘 하루를 사과나무 심는 마음’으로 한순간 한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삶을 갈무리해 가는 사람들이다.

노년층이라고 삶을 일찍 접거나 나태해질 일이 아니다. 풍요의 가을처럼 마지막 삶을 더 충실하게 가꿔야 한다. 설교의 달인 찰스 해돈 스펄전의 명언이다.

할 일이 생각나거든 지금 하라./ 오늘 맑지만 내일은 흐릴지 모른다./ 어제는 이미 당신의 것이 아니고 내일은 당신의 것이 안 될지도 모르니 지금 하라./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곁에 있지 않다./ 사랑의 말이 있다면 지금 하라./ 친구가 떠나기 전에 장미가 피고, 가슴이 설렐 때 지금 당신의 미소를 보여주라./ 당신의 해가 저물면 노래 부르기엔 이미 때가 늦다./ 당신의 노래를 지금 불러라.
노인들이 새겨 담아야 할 말이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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