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저 그래”, “그냥, 걸었어”,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 “그냥, 좋아”.…그냥은 일상적인 말로 많이 쓰인다. 사전적 의미는 ‘아무런 변화없는, 줄곧, 아무런 조건이나 까닭없이’ 등 세 가지로 풀이된다. 그냥은 ‘의미따위가 없다’는 뜻인 셈이다. 하지만 어떤 말보다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말 또한 ‘그냥’이 아닌가 싶다.
어느날 불쑥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어쩐 일이야?’ 하고 묻는다. 그 친구는 대답한다. ‘그냥 걸었어’. 하도 오랜만이라 서로 어색하게 ‘잘 지내지, 언제 한번 보자’라며 별 이야기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 친구는 왜, 그냥 전화를 했을까? 단지, 잘 지내고 있음을 알리려고…. 곰곰이 생각하다보니 김이율 작가의 에세이 ‘잘 지내고 있다는 거짓말’이 떠올랐다. “당신은 ‘그냥’이란 말의 의미를 아시나요? 그냥이라는 말 속에는 수천, 수만 개의 간절한 그리움이 숨겨져 있답니다. 네가 그립다. 네가 보고싶다. 네가 걱정된다. 너랑 말하고 싶다. 너와 함께 하고 싶다. 너의 손을 잡고 싶다. 너랑 놀고 싶다. 너를 사랑한다. 나 지금 힘들다. 나의 마음을 알아주라. 나 외롭다. 나 눈물난다. 나 네가 필요하다…..그냥, 그냥은 그냥이 아닙니다. 당신을 부르는 애달픈 목소리입니다”
전화를 끊고나서야 ‘아, 그냥은 그냥이 아닐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걸었어’라는 말을 그냥 흘려버린 것을 후회했다. 참으로 그냥, 그랬다. 그냥은 아무 이유없이라는 뜻이지만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라는 의미일 수 있다.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지만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의 언어에는 한계가 있다. 사람의 복잡한 감정을 한두 마디로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어난 절묘한 말이 ‘그냥’이라 한다. 그냥은 논리적이나 과학적이지 않다. 대개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걸 의미한다.
작가 한수산의 에세이 ‘그냥’이란 글을 보면 우리에게는 그냥이라는 말이 있다. 원인은 있지만 아주 불분명할 때 쓰이는 말이다. 마치 예술행위 가운데 행위예술이라고 하는 것처럼 즉흥적이기까지 하다. 그냥은 아무 목적도 없다. 무엇을 위해서라는 정확한 까닭도 없다.그러나 이 그냥이라는 말은 유유자적, 허물없고 단순하고 그러면서 오히려 따스하게 정이 흐른다. 그냥은 그런 존재인 셈이다.
우리는 말이 마음을 다 담지 못할 때 ‘그냥’이라고 말한다. 그냥이 가장 순수한 이유다. 그냥은 이런저런 딱 부러지는 이유가 없다. 마음가는대로 자기자신도 잘 모르는 끌림이 있다. 사람이 좋은데 이유가 있으면 좋아하는 사람이 바뀔 수 있다. 외모, 성격, 경제조건 등 이런저런 조건을 이유로 좋아한 사람들이 그렇다. 시간이 흐른 후 더 좋은 조건의 사람이 나타나면 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냥 좋아서 좋아했다면 그런 사람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요즘사람들은 목적과 원인, 이유가 분명해야만 만나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예 관심조차 없다. 그런 인간관계 속에서 ‘그냥’이란 말이 주는 의미는 너무도 크다. 그냥이라는 이 말이 가지는 여유를 우리는 때때로 잊고 살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꺼내고 싶지만 쉽게 꺼내지 못하는 말이 늘어만 간다. 자꾸 말을 삼키게 된다. 삼켜버린 말이 그냥 사라지거나 흩어진다. 마음 한구석을 정처없이 배회하며 숨이 붙어 있는 말들조차 다시 밖으로 꺼내는 것을 망설인다.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일들도 많아진다. 자꾸 사소한 일조차 포기한다. 포기한 일들은 그냥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마음속에 담고 있던 일을 하려해도 걱정이 길을 막아선다. 망설이고 포기하는 그런 삶속에서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잇는 그냥 여유로운 날들을 꿈꾼다.
요즘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만 만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목적, 원인, 이유를 따지며 사람을 가려 만나는 이들도 수두룩하다. 그냥 보고 싶다고 찾아 나서는 이들은 손에 꼽는다. 그냥 말하고 싶고 듣고 싶어 전화하는 사람도 적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는 보고 싶은 사람은 그냥 찾아가고, 목소리가 듣고 싶으면 그냥 전화할 수 있는 망설이지말고 여유로운 그런 그냥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왠지 오늘은 따뜻한 정이 있는 ‘그냥’이라는 말이 더욱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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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