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황금변기, 누가 훔쳐갔을까?

2019-10-04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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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14일 영국 블레넘 궁에서 전시 중이던 이태리 예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18K 황금으로 만든 작품 황금변기 ‘아메리카’가 도난당했다. 총 103Kg, 싯가 250만 달러짜리 황금변기는 전시회 이틀만에 도난당했는데 배관이 연결되어 실제로 사용할 수 있어 통째로 뜯어가 버리니 전시장이 물바닥이 되었다고 한다. 어떻게 이 엄청난 작업 동안 경호팀이 모를 수가 있지?

바로 이 황금변기가 지난 2016년 9월 뉴욕 구겐하임 뮤지엄 5층 화장실에 전시되었을 때 두 시간을 기다려 구경한 적이 있다. 한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면 가이드가 화장실 문을 열어 황금변기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가게 했으며 15분마다 세제를 들고 들어가 청소한 다음 사람을 들여보냈다. 안에서 사진을 찍든 볼 일을 보든 일단 문이 닫히면 수분동안은 황금 변기는 오롯이 그 사람만의 것이었다.

화장실에 관한한 우리는 숨기고 감춰야할 것, 입으로 말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1917년 마르셀 뒤생은 남성용 변기를 거꾸로 세우고 제목 ‘샘’(Fountain)을 붙여 앙데팡당전에 출품했다. 관객들로부터 저속하다, 지저분하다 온갖 욕을 다 먹었지만 지금은 변화, 예술적 역발상 아이디어 창시자로 인정받는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권력, 위선, 부도덕함을 폭로하는 의미로 제작했다면서 상위 1%의 황금변기를 99% 대중에게 돌려준 것이라 했다. 상어지느러미 요리를 먹든 햄버거를 먹든 변기위에 앉는 것은 다 마찬가지라는 것.

볼세비키 지도자 불라디미르 레닌은 1921년 프롤레타리아에게 약속했다. ‘공산주의가 온 세상에 도래한 그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중화장실에 황금변기를 설치하겠다’, 그러나 공산 국가는 거의 다 망했고 자본주의는 여전히 득세다. 세상은 점점 황금만능주의가 되어가고 있다.

경찰은 절도 용의자로 1명을 체포했다지만 황금 변기의 행방은 묘연하다고 한다. 이 유명한 황금 덩어리를 어디에 팔 수 있을 것인가. 아마 바로 그날로 녹여 돈으로 바꾸어 도둑 일당들이 나눠 가졌을 것이다.

‘황금변기, 누가 훔쳐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오래전에 읽은 스펜서 존슨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하는 책 제목이 기억났다. 이 책은 꼬마 인간 헴과 허, 스니프와 스커리라는 두 마리 생쥐가 주인공이다. 이 넷은 미로 속에서 맛있는 치즈를 찾기 위해 뛰어다닌다. 미로는 복잡하게 얽혀있어 어두운 모퉁이가 있는 가하면 다른 길도 있다. 마침 우리네 인생처럼,

그런 어느 날 치즈창고 C를 찾아낸다. 생쥐들은 매일아침 혹시 다른 변화가 없나 살펴보며 치즈를 먹지만 인간들은 평생 먹어도 돼 하면서 먹기에만 바쁘다. 어느 날, 치즈창고가 텅 빈다. 생쥐들은 미련없이 새로운 창고를 찾아 미로 속으로 들어간다. 헴은 다른 곳은 위험하고 이미 늙었다면서 걱정과 좌절에 빠지고 허는 변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면서 미로를 헤맨다. 드디어 허는 새 치즈 창고를 찾아내고 그곳에서 옛친구 스니프와 스커리도 만난다. 헴은 배를 쫄쫄 골아가면서 아직도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하고 어리석은 질문에 빠져있겠지.

이민생활 20년, 30년이 되어가면서 자리 잡은 친구가 있나 하면 지금도 여전히 통장에 잔고가 달랑달랑한 친구가 있다. 출발은 똑같이 빈손으로 시작했지만 빈부의 격차가 심한 것은 왜일까?

이것저것 업종 바꿔가며 온갖 장사 다 해보았지만 하는 것마다 족족 망하여 지금도 허덕이며 사는 가하면 우연히 택한 업종이 시류에 맞아 쉽게 자리를 잡게 되기도 한 것이다. 운이나 인복이 있거나 없거나를 떠나 패배의식에 젖어 있는 것보다는 한 번도 안해 본 일이라도 두려움을 버리고 도전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하고 화내지 말고 가능성을 찾아 운동화끈 질끈 동여매고 밖으로 나가보자. 이미 녹아버린 황금변기는 원래 내 것이 아니었으니 새 치즈를 찾으러 가자. 치즈는 좋은 업종이나 직장, 인간관계, 재물, 건강, 영적인 평화 어디에도 해당된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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