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분노심

2019-10-04 (금) 윤석빈 / 은퇴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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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이승만 대통령은 분노심이 일면 그의 얼굴 근육에 경련을 일으킨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다. 닉슨대통령은 분노하면 그의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지면서 그의 눈과 입은 마치 야릇한 미소를 짓는 것과 같은 인상을 준다고 한다. 현 트럼프 대통령이 분노하면 백악관 지붕 밑의 모든 방들의 공기가 달라진다는 말도 있다.

얼마 전에 한 심리학자는 분노심을 자유로이 발산하는 사람은 오래 살고 분노심을 안으로 누르며 참는 사람은 일찍 죽는다는 말을 했다. 만일 이 이론이 사람에게 적용된다면 오래 살기 위하여 우리는 분노심을 거침없이 발산하며 살아야 할 것 같다.

분노심은 확실히 인간 감정의 한 유일한 특징인데 오늘과 같이 심리과학이 발달한 상황에서도 분노심같은 감정에 대하여 일률적이고 흡족한 연구 이론은 아직 나와 있지않다. 어떤 심리학자는 사람의 중요한 감정을 공포감 분노감 우울감이라고 나열하고 그 셋을 ‘거룩하지 않은 삼위일체’ (Unholy Trinity), 그리고 그중 분노심은 ‘거룩하지 않은 영’ (Unholy Ghost) 이라고 불렀다.


형사사건을 집행하는 법관은 범죄의 중량을 정확히 달기 위하여 범행 당시 분노심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를 물어야 할 때가 있다. 심리학자는 사람의 분노심은 동물의 분노심과 같다는 이도 있고 또 그렇지않다는 이도 있다. 종교인은 분노심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지에 대하여 상치되는 가르침이 있고 어떤 종교에서는 신에게도 분노심이 있다고 제시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사회의 통상적인 관습으로는 분노심을 억제 없이 함부로 발산하는 것을 그리 장려하지 않는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미숙한 사람이라고 하여 그의 인격에 결함이 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우리의 통념이기도 하다.

분노심은 틀림없는 부정 감정으로서 분노심을 일으키는 당자도 그것이 별로 유쾌한 감정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분노심은 충동과 공격과 적개심의 합체이므로 그것을 받는 사람의 입장은 더욱 불유쾌하여 피해나 모욕감을 위시해서 심한 상처까지 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역분노심을 일으키게 한다.

분노심은 수시로 강자와 지배자가 가지는 특권처럼 돼있다. 무서운 독재자가 분노하면 그 나라의 공기가 삼엄해지고 피지배자는 눌려서 울화병을 일으킨 나머지 정도가 지나치면 풀 길 없는 ‘한’으로 맺히게 된다.

충동과 공격과 적개심 외에 분노심 속에는 힐난과 정죄와 형벌을 주고 싶어하는 심성이 들어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분노심의 핵심은 일종의 가치 판단이라고 말했다. 분노자는 자신이 가치판단의 척도가 되며 분노가 끓어오를수록 절대자의 자리에 군림한다. 신학에서는 노하기를 더디 하는 신과 노하는 신 두 측면이 있고 노하기를 더디 하는 신은 사랑의 신이고 노하는 신은 심판과 정의의 신이라고 말한다.

희랍 철학자는 정의의 척도는 강자의 잇권 (Interest) 이라고 하여 매 사회마다 정의의 척도가 다른 것을 우리는 봐 왔다.

<윤석빈 / 은퇴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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