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난민돕기 음악회를 열어온 지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2000년 1월초였다. 젊은 여자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윤성신이라는 여성은 중국현지를 다녀와서 탈북자들의 실상을 알리는 모임을 가질 예정이라면서 가곡연주를 부탁해 왔다. 금강산식당 지하실에서 모임에 가보니 참석자들이 초만원을 이루어 서서 행사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탈북어린이들의 실상이 비디오로 상영되었다. 부모를 잃고 먹이를 찾아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아이들, 추운겨울에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해 남루한 옷자락으로 몸을 감싸고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벌벌 떨면서 장바닥에서 짓밟힌 국수가락을 주워 먹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철조망을 넘고 도망치다가 눈이 철조망에 걸리어 눈알이 툭 튀어져 나온 것을 덜렁덜렁 달고 다녔다. 어떤 여자아이는 먹지못해 뼈만 앙상하게 남아 곧 쓰러져 죽을 것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비디오 상영이 계속되는 동안 여기저기서 안타까운 신음소리가 들렸고 흐느끼는 울음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후 약 3일동안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 내렸다. 그래서 제1회 탈북난민돕기 음악회를 방지각 목사님의 따듯한 배려로 2000년 3월25일 뉴욕효신장로교회에서 열었다, 그 당시 탈북자들의 참혹한 실상이 TV와 언론에 이미 널리 알려지고 있어서 너무나 많은 참석자들이 모여들어 청중의 1/3 은 되돌아갔다. 8.000달러가 모금되었다.
중국현지에서 10여년간 선교활동을 한 남준우 목사, 선교사 지망생 2명과 본인 등 4명이 중국을 향했다. 흑룡강성으로 가니 한국교회가 있었고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1주일 동안 머문 다음 탈북자들과 꽃제비 아이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산다는 도문으로 향했다. 기차로 장장 14시간이 걸렸다.
5명의 꽃제비 아이들을 비밀리에 돌보고 있는 어느 선교사집을 찾아가니 어린이 둘은 외출 중이고 세 명만 만났다. 한 아이는 오랜 영양실조로 말도 못하는 정신박약아가 되어 있었다.
그 이후 훈춘, 연길, 심양 등지를 방문했다. 도문에서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연길을 가는 길 산골짝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탈북여성들이 살아남기 위해 성의 노예가 되어 하루하루를 비참하게 살아간다는 소식을 접하였을 때 가슴이 미어지는 듯 괴롭고 마음이 아팠다.
그로부터 탈북난민구출 음악회를 20여년 동안 열면서 모은 성금으로 고난에 처한 내 혈육의 생명을 구출하는데 쓰일 수 있게 된데는 아름다운 동포애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귀한 도움을 보내주신 동포 여러분들에게 깊은 감사드린다. 매 음악회 행사가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귀한 도움으로 이끌어준 한국일보사를 비롯 여러 언론사에 깊은 감사 드린다. 오는 10월6일(일) 오후 6시 뉴욕효신장로교회에서 제40회 탈북난민구출 음악회를 연다. 행사위원장으로 귀한 헌신을 하는 윤성신 선생에게 깊은 감사드린다.
이번 음악회에는 목숨 바쳐가며 탈북자 구출에 헌신, 1,500여 명을 한국과 미국으로 구출시킨 천기원 목사에 의해 극심한 고난에서 최근 구출된 4명의 탈북자매들도 함께 참석한다. 사랑이 맺어주는 감격적인 만남이 될 것이다.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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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선/ 성악가뉴욕예술가곡연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