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누가 그들을 굶겨죽였나

2019-09-30 (월)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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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의 여기자 ‘로라 비커’가 서울발 특종 기사로 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더라면 너무나 충격적이면서도 슬프고 안타까운 이 이야기는 아직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먹는 음식보다 먹고 남아 내다 버리는 음식이 더 많다는 풍요의 도시 서울에서 어떻게 사람이 굶어죽는단 말인가. 더구나 독거노인도 아닌 한창 일 할 나이의 40대 여성이 말이다.

촘촘한 사회안전망과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 인프라를 자랑하는 서울에서 어떻게 두사람의 외로운 주검이 아무도 모른 채 2개월 넘게 방치될 수 있었는가.

악취가 난다는 수도검침원의 제보를 받고 아파트 관리인이 문을 따고 들어가 처음으로 그들의 외로운 죽음을 목격한 것이다. 냉장고에 음식이라고는 고춧가루 한봉지 밖에 없었고 통장의 잔고는 0원으로 되어있었다. 배고픔과 폭정을 피해 온갖 고생을 하며 탈북한 한성옥씨가 서울에서 굶어죽다니….


2009년 탈북한 한성옥씨는 중국에서 브로커의 소개로 조선족 김모씨를 만나 결혼을 했으며 둘 사이에 아들을 두었다. 중국인 남편은 한성옥씨의 신분 문제를 약점잡아 폭행과 학대를 일삼았다. 견디다 못한 한씨는 집을 도망나와 단신 대한민국행을 택했다.
그러나 한씨의 웃음진 얼굴 이면에는 늘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중국에 남겨두고 온 큰아들 때문이었다. 한국에 와서도 아들을 못잊은 한씨는 중국인 남편과 자주 연락을 했고 한씨는 아예 남편과 아들을 한국으로 초청하여 같이 살기로 하였다. 한씨는 통영의 조선소에 일자리를 얻은 남편을 따라 집도 통영으로 옮겼다.

그러나 중국인 남편의 한씨에 대한 손찌검은 한국에 와서도 계속되었다. 남편 김모씨는 둘째 아이를 임신한 한씨를 심하게 폭행하였으며 그로 인해 한씨의 작은 아들은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남편은 어느 날 큰 아들을 데리고 중국으로 가버렸다.

장애인 아들과 남겨진 한씨는 어린 아들을 하루종일 돌봐야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직장을 잡을 수 없었다. 탈북한 지 5년이 지나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도 끊겼다. 한씨의 생활은 나날이 궁핍해갔다. 아파트 임대료가 여러 달 밀리고 내지 못한 각종 공과금 고지서들이 수북이 쌓여갔다. 핸드폰과 인터넷도 끊겼다. 한씨 모자는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철저하게 외부세계와 단절되어갔다.

한씨가 아들과 함께 봉천동 임대아파트 방에서 외롭게 굶어죽어갈 때 한씨를 남한으로 내 몬 북한의 김정은은 한 발에 쌀 수천 가마 값은 족히 할 미사일을 연이어 쏘아댔다. 한국 정부는 똑같은 대한민국 국민인 탈북자들의 복지와 인권에 무관심할 뿐 아니라 오히려 대북관계에 걸림돌이 된다며 그들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한씨 모자를 굶겨죽인 자들은 바로 이들이다.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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